[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출연硏, 개혁에 저항 말라
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IMD), 세계경제포럼(WEF) 등이 매년 국가경쟁력을 발표하지만 그때마다 논란이 뒤따른다. 그만큼 국가경쟁력은 지표 잡기가 어려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국가에는 경쟁력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범위를 좁히면 분야마다 경쟁력을 가늠해 볼 간단한 잣대(rule of thumb)가 있다. 산업경쟁력이면 세계적 기업 수, 교육경쟁력이면 세계적 대학 수로 따지면 얼추 맞다. 과학기술경쟁력도 세계적 연구소 수와 거의 비례한다. 무엇이 세계적 연구소인지도 그 체크포인트들이 있다. ‘과학기술자로부터 평판이 높은 곳’ ‘한번 가고 싶은 곳’ ‘그곳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명예스러운 곳’ ‘세계적 과학자를 끌어당기는 곳’ 등이 그것이다. 한국에 세계적 연구소가 있는가. 서구와 경쟁한다는 우리로서는 이것이 늘 숙제였다.

이대로 가면 존폐 위기에 직면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소들이 통합 문제로 시끄럽다. 고만고만한 연구소로 경쟁이 안 되면 통합을 해서라도 판을 새로 짜야 하는데 저항이 만만찮다. 하지만 출연연은 지금 그럴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연구의 비효율성 문제만 터지면 정부가 째려보는 곳은 바로 출연연이 되고 말았다. 기업들은 더 이상 출연연에 기대하는 게 없고, 대학은 출연연에 갈 돈을 차라리 자신들로 돌리라고 난리다.

더 큰 문제는 돈만 쏟아 부으면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데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국민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비 인플레, 모럴 해저드에 대한 우려가 그렇다. 예산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 언제까지 과학기술이 성역으로 대우받을지도 의문이다. 물리학자 자이먼(J. Zyman)의 ‘GDP 3% 상한’ 가설은 아직도 유효하다. 연구개발비를 4% 이상 투자하는 국가는 핀란드 같은 극히 예외적 경우다. 이명박 정부가 GDP 5%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3%대 벽을 넘지 못했다. 자이먼 말대로 선거로 정권을 창출하는 민주 정치와 다원화된 사회에서 특정 분야에 돈을 쏟아 붓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당장 우리만 해도 복지다, 뭐다 지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게 그 증거다. 결국 그동안 과학기술에 쏟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 비판이 고조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연구소 구조개혁 마지막 기회

연구경쟁력은 돈, 사람, 제도, 문화의 함수다. 지금까지는 연구비 늘리는 게 우리의 과학기술정책이었다. 부처마다 돈 늘리기 싸움을 했고,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잔뜩 키워 놨다. 그러다 성과가 안 나면 연구소를 때려잡는, 지극히 편리한 과학기술정책이었다. 연구소를 통합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이관하려 할 때 부처들이 그토록 반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고 보면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는 출연연이 억울한 점도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 질곡에 빠져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 이상 ‘공무원 타령’ ‘돈 타령’ ‘사람 타령’만 할 게 아니라 ‘구조’를 확 바꾸지 않으면 안 될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대통령의 힘을 빌려 부처 이기주의 벽을 겨우 깼는데 정작 출연연이 반대하면 출연연 이기주의밖에 안 된다. 속된 말로 돈 낸 납세자들이 원하면 정부 연구소는 반대할 그 어떤 명분도 없다. 출연연 노조가 투쟁한다지만 정부도, 시장도 외면하는 그런 연구소가 되면 그땐 누굴 상대로 투쟁할 건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