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공통점은 노인들의 사랑과 성을 주제로 다룬 소설이나 영화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노인의 성을 드러내놓고 거론하는 것은 ‘(점잖으신) 어르신에 대한 불경’으로 여겨져 사실상 금기시돼 왔다.
‘노인=갱년기=성욕 상실’이라는 공식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탓이기도 하다. 동성애나 청소년 등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 영화나 소설이 꾸준히 상영되거나 출간돼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수명 100세 시대에 ‘65세 이상의 법규상 노인’은 더 이상 뒷방 늙은이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의학 발달과 식생활 개선으로 신체 나이부터 놀랄 정도로 젊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젊은 노인들’의 성에 대한 높은 관심은 그들을 주제로 한 개봉 영화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지난해 2월 개봉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평균 연령이 69세인 주연배우(이순재·윤소정·송재호·김수미)들이 출연, 164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20~30대가 선호하는 톱스타도 없었다. 그런데도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저력은 영화관 좌석을 대부분 차지한 ‘건강한 노인들’이었다. 영화는 고집 세고 성질 사나운 우유 배달 할아버지 만석(이순재)이 아내와 사별한 뒤 파지를 팔며 살아가는 송씨(윤소정)에게서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모습 등 유쾌한 노년의 로맨스를 그렸다.
앞서 2002년 개봉한 ‘죽어도 좋아’는 실화를 바탕으로 70대 노인들의 성을 가감없이 화면에 담아냈다. 칸 영화제 출품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두 번이나 제한상영 결정을 내려 개봉 전부터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박치규·이순예 부부가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배우자와 사별한 이들 노인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동거에 들어간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서 함께 목욕하며 어린아이처럼 장난치고, 베드신에서는 “아유, 죽겠네”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2억여원을 들여 제작한 이 영화는 전국 43개 관에서 개봉, 6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일본에선 이미 1960년대에 노년에 접어든 노인들의 성을 다룬 소설이 화제가 됐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소설 《설국》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후기 문학의 대표작 《잠자는 미녀》가 그것.
주인공 에구치 노인은 예순일곱 살로 지인에게서 바닷가 외딴곳에 자리한 ‘잠자는 미녀의 집’을 소개받는다. 이곳에선 남성의 능력을 상실한 노인을 상대로 알몸으로 잠든 앳된 아가씨들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해주는 비밀스러운 영업을 하는 곳이다. 폐쇄 공간 안에서 나신의 아가씨와 하룻밤을 보내면서 노인들은 자신의 욕망을 달래고 위안을 받기도 하며 노추에 절망한다.
가와바타가 60대에 쓴 이 소설은 출간 당시 그 독특한 소재와 충격적인 내용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1969년 영어를 시작으로 20여개 국어로 번역됐다. 일본과 독일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김동민 기자 gm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