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법인을 통해 10억달러의 글로벌본드를 발행하기로 한 것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지난달 초 풀가동에 들어간 오스틴 공장의 시스템 반도체 라인에 대한 투자확대 목적이라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투자은행(IB) 전문가들은 “삼성이 미국법인의 글로벌본드 발행을 계기로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을 늘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미 오스틴 공장 투자 확대 목적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은 월 4만장의 웨이퍼 생산 능력을 갖춘 시스템 반도체 라인이다. 업황 호조로 제품 출하 5개월 만인 지난달 초 풀가동에 들어갔다. 시스템 반도체는 컴퓨터의 중앙제어장치와 휴대전화 모뎀 칩 등 시스템을 제어하고 IT(정보기술) 제품의 두뇌 역할을 한다. 이에 대한 R&D(연구·개발)를 강화해 반도체 시장에서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게 삼성전자의 구상이다.

삼성전자의 글로벌본드 발행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5억달러의 채권을 발행한 지 14년 만이다. 국내 시장에서 원화표시채권을 발행한 것도 2001년이 마지막이었다. 2001년 이후로는 무차입 경영을 고수하면서 국내외 채권시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풍부한 현금이 쌓여 있어 굳이 채권을 통한 자금조달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미국법인을 통해 글로벌본드를 발행하기로 한 것을 삼성그룹 재무전략 변화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방종욱 현대증권 연구원은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하고 안정적인 수익이 기대되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삼성그룹의 재무 전략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삼성전자 본사도 채권시장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중국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을 앞두고 삼성전자가 딤섬본드(역외 위안화표시채권) 발행을 검토한다는 얘기가 돌았다”며 “올해 50조여원의 투자계획을 세운만큼 다양한 형태의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하고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2분기가 채권발행 적기”

삼성그룹의 자금조달 변화는 지난해부터 나타났다.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그룹이 국내에서 발행한 채권은 4조3400억원(여신전문금융회사채권 포함)에 이른다. 만기가 돌아와 차환 목적으로 발행한 채권을 제외하면 순발행액이 약 2조400억원이다. 2010년 삼성그룹의 채권 순발행액은 2400억원에 불과했다. 1년 새 순발행액이 8.5배 급증한 셈이다.

삼성그룹이 채권 발행에 적극 나설 경우 시기는 2분기가 유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 11일 30여개 계열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이 모인 회의에서 올해 경기가 ‘상저하고(상반기 부진 후 하반기 개선)’의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한 뒤 2분기를 회사채 발행의 적기로 꼽았다.

3분기부터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나타나면서 절대금리 수준이 조정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013년부터 통화정책 기조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올해 가능한 한 필요한 자금을 미리 조달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