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차상위계층 실종 사건
복지 정책을 얘기할 때마다 감초처럼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다. ‘차상위계층’이다. 생계조차 꾸리지 못하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보다는 생활 형편이 낫지만, 소득액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내’로 적어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는 서민들이다.

차상위계층은 김대중 정부가 ‘전 국민의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을 1999년 제정한 이후 줄곧 문제가 돼 왔다. 정부로부터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층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되면 4인가구 기준으로 올해 최저생계비 149만5000원(현물지원액 포함)을 매달 지원받는다. 하지만 차상위계층은 최저생계비를 웃도는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이 같은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이로 인한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치권과 정부는 차상위계층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꾸준히 개선해왔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차상위계층이라는 단어가 정치권에서 실종됐다. 국회가 복지 논쟁을 한창 벌이면서부터였다. 각 당이 복지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냈지만, 차상위계층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정부도 다를 게 없다. 만 3세 미만 아동 한 명당 월 10만~20만원의 양육수당을 지급하기로 2010년 결정한 것이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 조치의 마지막이었다. 이후 일부 미세조정을 제외하면 차상위계층은 정부 정책의 고려 대상에서 빠졌다.

최근 복지 쟁점으로 부상한 보육·양육비 지원 문제도 차상위계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보육비는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에 영유아를 보내는 데 들어가는 돈이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와 차상위계층은 이미 지원받고 있다.

보육·양육비 추가혜택 없어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키우는 사람들에게 주는 ‘양육수당’도 마찬가지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는 가족 수가 늘어날 때마다 최저생계비가 연동해 늘어난다. 예컨대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최저생계비 지원액이 90만6000원(2인 가구)에서 117만3000원(3인 가구)으로 늘어나는 식이다. 차상위계층은 3세 미만의 아동에 대해 양육수당을 이미 받고 있다.

‘진짜 서민’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복지 정책이 중산층과 고소득층으로 확대되는 것은 선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 계층의 70%’ 또는 ‘모든 계층’으로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다수의 표를 얻겠다는 선거 전략의 일종이다.

무상급식은 2년 전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자치단체장 선거 때 이슈였다. ‘가난한 아이들의 눈칫밥’ 문제로 포장이 됐을 뿐 실제로는 중산층과 고소득층 자녀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였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나 차상위계층은 그 이전부터 무상급식을 제공받았다.

‘눈칫밥’을 없애자는 구호가 힘을 얻으면서 우리 사회의 ‘염치’도 함께 사라졌다. 중산층은 이제 아무런 거리낌없이 ‘우리에게도 보육비나 양육수당을 달라’고 정부에 말한다. 내후년 이후에는 그 대상이 무상의료로 확대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과거 빈곤층에게 선택적으로 주어졌던 혜택을 중산층과 고소득층도 누리게 된다.

그 무게로 국가재정이 내려앉고, 결국에는 빈곤층마저 떠받칠 수 없게 될 것이다. ‘차상위계층 실종사건’을 가볍게 넘겨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현승윤 경제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