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9일 해외펀드에 투자해 손실이 났더라도 환차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금융투자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40여만개로 추산되는 비(非) 환헤지 해외펀드 가입자들의 펀드 환매를 앞당기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아직까지 가능성은 낮지만 글로벌 증시 변동에 따라 해외펀드 환매 대란이 오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지금도 환차익에 대해선 과세

환헤지 안한 해외펀드 환매대란 오나 '긴장'
해외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이익 또는 손해를 보는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해당 펀드가 투자한 해외 국가 주식 등의 가격 등락에 따른 것이다.

다른 하나는 투자기간 동안 원화 대비 다른 통화의 환율 변동에 따라 발생한다. 많은 투자자들은 해외펀드 가입시점에 환헤지를 함으로써 이 같은 환율 변동 위험을 제거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해외펀드 가입자의 70~80%는 환헤지를 통해 환위험을 없애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반면 나머지 20~30%는 환율 변동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상태다.

이번 소송은 해외펀드 세금을 계산할 때 과세 당국이 해외펀드의 두 가지 손익 원천을 따로따로 구분해 과세한 데서 기인한다. 과세 당국은 해외펀드 가입자가 펀드 투자 국가의 주가 하락 등으로 원금 손실이 났더라도 원화 약세 등으로 인해 환차익이 발생했을 경우 원금 손실 여부와 상관없이 환차익 부분에 대해선 과세하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김모씨는 2007년 6~8월 비(非)헤지 일본펀드에 2억3000만원어치를 가입했다가 이듬해 12월 환매해 1억6121만원을 돌려받았다. 돌려받은 금액은 환차익에 해당하는 1억5784만원에 대해 배당소득세 2430만원을 뺀 금액이다. 이에 김씨는 “원금 손실이 났는데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고 법원은 김씨의 손을 들어 줬다.

이상석 한화투자증권 WM컨설팅팀 차장(세무사)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김씨 같은 사례가 잇따르면서 재정경제부는 해외펀드 환차익 손익 계산 기준점을 취득일이 아닌 환매일로 변경했다”며 “이로 인해 해외펀드 환차익에 대한 과세 부담은 경감됐지만 지금도 과세는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환헤지 안한 해외펀드 환매대란 오나 '긴장'

◆최대 40만개 펀드 환매 우려

증권업계는 이번 판결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대상은 2007년 하반기부터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의 해외펀드 가입자들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원·달러 환율은 900원대 초반에 머물렀지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2009년 3월 1575원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 중 글로벌 주식시장은 폭락해 투자 손실이 발생했지만 환율은 올라 환차익이 발생했다.

작년 말 기준으로 2009년 이전에 설정된 해외 주식형펀드 중 원금을 회복하지 못한 계좌 수는 200만여개로 파악된다. 이 중 환헤지가 되지 않은 비율을 20%만 잡아도 약 40만개 계좌는 원금 손실 와중에 환차익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해외펀드 환차익 과세가 최종 폐지될 경우 환헤지를 해놓지 않은 해외펀드 가입자들이 증시 전망을 안 좋게 보면 언제든 환매를 할 공산이 높다”며 “환매 대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서동필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법원 판결로 해외 주식형펀드보다는 채권형펀드 투자자들이 훨씬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상열/임근호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