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역대 최고 딜은 'STX의 범양상선 인수'
때로는 딜(deal) 하나에 기업의 명운이 결정되곤 한다. 2000년 손 잡았다가 대규모 손실을 보고 다시 분사해야 했던 AOL과 타임워너는 잘나가던 기업들이 인수·합병(M&A) 때문에 무너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반면 아르셀로미탈 등은 M&A를 성장의 핵심전략으로 삼아 세계최대 철강업체 자리에 올라섰다.

국내에서도 M&A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곳이 있는가 하면 기업의 뿌리마저 흔들린 회사도 있다. 국내 투자은행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 중 ‘역대 최고의 딜’로 STX그룹의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를 선정했다. STX그룹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는 ‘최악의 딜’로 꼽혔다.

◆STX,범양상선 인수 ‘최고 딜’

한국경제신문이 마켓인사이트 출범을 맞아 국내 IB 전문가 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 중 22.22%가 범양상선 매각을 최고의 M&A로 꼽았다. STX그룹이 인수 3년 만에 싱가포르 증시 상장을 통해 인수자금 대부분을 회수한 데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키워낸 점이 ‘잘된 M&A’의 본보기가 됐다는 평가다.

M&A를 기반으로 성장한 STX는 2007년 글로벌 2위 크루즈 선사 야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하며 또 한번 저력을 과시했다.

두산그룹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는 16.66%의 득표를 받아 2위에 올랐다. 그룹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 놓았을 뿐 아니라 기업가치도 한 단계 높였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같은 이유로 두산의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하이트그룹의 진로 인수가 11.11%로 뒤를 이었고 동원그룹의 스타키스트 인수, 포스코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등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업공개(IPO) 부문에서는 국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던 삼성생명 IPO가 33.66%의 득표율로 수위에 올랐다. 대표 주관사를 맡았던 한국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4조8881억원 규모에 달하는 공모를 무리 없이 원활하게 소화했다는 평가다.

베스트 IPO 부문 2위는 IPO 단계에서 외국 자본이 처음으로 참여한 삼성카드(10%)였다.

또 예금보험공사의 성공적 자금회수 사례로 꼽히는 대한생명 IPO(7%)가 3위였다.

◆금호의 대우건설 M&A ‘최악’

역대 최악의 M&A를 묻는 질문에는 66.66%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를 꼽았다. 무리한 M&A로 사실상 그룹의 해체를 불러왔다는 이유에서다. 팬텍의 SK텔레텍 인수(11.11%)가 2위를 차지했다. 우리사주조합의 우선매수청구권 문제를 풀지 못한 탓에 주인찾기가 표류 중인 쌍용건설 매각(5.55%)이 뒤를 이었다.

IPO 분야 최악의 딜로는 중국고섬이 지목됐다. 응답자의 63%가 ‘차이나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 지목된 중국고섬을 꼽았다. 중국고섬 사태로 외국기업에 대한 전반적인 국내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진로(현 하이트진로) IPO는 13.33%의 득표율로 최악의 IPO 부문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주관사 선정을 위한 증권사들 간의 과도한 경쟁 탓에 공모가가 너무 높게 책정됐고, 결국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혔다는 점 때문이다. 3위는 대우증권스팩이 차지했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1호로 공모 이전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본래의 목적인 합병 가능성은 역대 스팩 중 가장 낮다는 평가다.

안재광/좌동욱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