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규 대한건설협회 회장 "3代째 건설업…일 안 풀릴 땐 아들과 아버지 산소 찾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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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맛남 - 최삼규 대한건설협회 회장
가세 기울어 대학 중퇴 후 2년간 일 배우며 가업 이어
주택 호황 때 유혹 느꼈지만 빌딩·토목 '외길'…장수 비결
기업공개로 내실·투명 경영…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가세 기울어 대학 중퇴 후 2년간 일 배우며 가업 이어
주택 호황 때 유혹 느꼈지만 빌딩·토목 '외길'…장수 비결
기업공개로 내실·투명 경영…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주인이 한강 밤섬 토박이입니다. 고향이 잘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25년째 영업을 하고 있지요.”
최삼규 대한건설협회 회장(72·이화공영 대표)은 자리에 앉자마자 식당 소개부터 했다. 그와 마주한 곳은 마포주차장 옆 양곱창구이 전문점 ‘마포나룻터’. 한강 방향으로 시야를 막는 건물이 없어 식당 2~3층에서는 밤섬이 그대로 내려다보였다.
최 회장이 이 집과 인연을 맺은 것은 10년 전쯤이다. 그는 이화공영 본사가 있는 마포에서 사회활동에 열심이다. 마포구 세정자문위원, 서부지방검찰청 범죄예방위원 등을 지냈다. 마포에서 사업을 일으키고 키운 까닭에 지역사회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맛집도 이왕이면 마포에 있는 곳을 즐겨 찾습니다. 이 집은 지역사회 일을 하는 분들과 찾았다가 맛에 반해 바로 단골이 됐지요.”
최 회장을 본 박은숙 사장(64)이 반갑게 다가왔다. 박 사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밤섬에 살았다”며 “백사장이 펼쳐진 고향 풍경을 잊지 못해 밤섬이 잘 보이는 여기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이 추천한 메뉴는 양구이와 보리굴비였다. 마포나룻터는 양곱창구이 전문점이다. 양은 소의 첫 번째 위(胃), 곱창은 소의 창자다. 박 사장은 “횡성 한우의 양을 구워 먹고 법성포에서 말린 보리굴비로 마무리하면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고 했다.
양을 숯불에 얹자 양 특유의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양구이의 감칠맛을 음미하며 3대를 이어가고 있는 최 회장의 건설업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3대째 이어가는 건설업
국내에서 건설업을 3대째 하고 있는 회사는 드물다. 건설업종은 경기 변동에 따른 부침이 심해 국내에서는 장수 건설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가족사가 궁금해졌다.
건설업을 시작한 최 회장의 부친은 초기에 승승장구했다. 6·25전쟁 이후 재건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진 덕분이었다. 그러나 건설업이 아닌 쪽에 잠깐 발을 담갔다가 어려움에 처했다. 대학을 다니던 최 회장은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중앙대 약대를 다니고 있었어요. 약사가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부친의 권유로 약대에 들어갔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학비 마련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요.”
아픈 기억일 법도 한데 과거를 되돌아보는 최 회장의 표정은 오히려 밝았다. 역경을 스스로 이겨낸 자부심이 배어나는 듯했다. 부친 회사가 폐업하자 친척 형님이 설립한 건설회사에 들어가 현장소장으로 2년 정도 근무했다. 죽기 살기로 일을 배웠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건설회사를 차렸다.
“당시만 해도 건설공사는 수익률이 아주 좋았어요. 공사 한 건만 수주해도 월급쟁이 수입 몇 배를 올릴 수 있었죠. 업체 수가 적어 경쟁도 심하지 않았고요.”
독립한 지 2년 정도 시간이 흐른 1971년 토목·건축 공사업 면허를 가진 건설회사 ‘동지’를 인수했다. 회사 이름을 현재의 이화공영으로 바꿔 40년째 이끌어오고 있다. 지금은 첫째 아들이 회사를 맡아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는 미국 유수 엔지니어링 업체에 근무 중이다.
“회사를 경영하는 첫째는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경기도 화성 선산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를 다녀오곤 합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해법이 떠오를 때가 많다고 하더군요.” 건설업 3대 얘기를 그는 그렇게 마무리했다.
○‘모든 것을 걸어야 산다’
가족사를 얘기하면서도 최 회장의 젓가락은 쉴새없이 양구이를 향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부담감으로 식사를 잘 못하는 이들이 많다. 최 회장은 예외였다. 잘 먹고 낙천적으로 사는 것이 성공 비결일까.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비결을 물었다.
최 회장은 “목숨을 걸고 일했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남들은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하겠지만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간 힘든 시기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족과 임직원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비장한 각오로 이겨냈지요.”
잘 모르는 분야로 외도하지 않은 것도 장수 비결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화공영의 주력 사업은 건축과 토목이다. 업무시설, 연구시설, 공장, 토목공사 등을 해왔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주택사업 호황기를 옆에서 지켜봤다. 남들이 주택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유혹도 느꼈다. 그래도 끝내 주택사업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앞으로도 주택사업을 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했다.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했어요. 시류에 휩쓸렸다면 지금까지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기업공개가 위기 극복 원동력
중견 건설업체는 증권시장에 잘 상장하지 않는다. 건설사 사세는 수주 여부로 결정나고, 수주를 주도하는 측은 대부분 창업자여서 애써 키운 회사를 남에게 빼앗긴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보수적인 업종 특성상 주주들의 이런 저런 간섭을 싫어하는 창업자들도 많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일찌감치 기업공개를 결심했다. 1994년 당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당초 대우증권의 권유로 상장을 결심했습니다. 주주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투명하게 경영해야 탄탄한 회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지요.”
18년 전의 상장 결정은 잘한 선택이었을까. 최 회장은 “상장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주주를 의식하고 내실 경영과 투명 경영에 힘쓴 덕에 외환위기, 미국발 금융위기 등 험난한 파도를 무사히 넘었다는 설명이다.
○시공사 선정 “협회에 문의하세요”
이화공영은 빌딩 공사를 많이 하고 있다. 건설회관 인근 논현동 청담동 등에서 오피스빌딩 공사를 진행 중이다.
최 회장의 수주 비결은 독특하다. 입찰 참여로 직접 일감을 따내기도 하지만 이화공영 공사장을 둘러본 사람들이 건물을 지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건물을 지을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길을 가다 공사장이 있으면 꼭 들러봅니다. 정성 들여 잘 짓고 있다고 생각하면 연락처를 수소문해 시공을 맡기지요. 현장 관리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최저가 낙찰제 유보 이끌어 낸 게 가장 보람"
건축에 문외한이라면 다세대주택 상가 빌딩 등을 지을 때 어느 회사에 맡겨야 할지 막막하다. 최 회장에게 우량 시공사를 고르는 노하우를 물었다.
“대한건설협회에 건설사 시공 실적 자료가 모두 있습니다. 옛날에는 협회에서 ‘추천 시공사 리스트’를 공개했지만 명단에서 빠진 업체들의 반발이 심해 지금은 발표하지 않습니다. 다만 협회에 문의하면 경험과 실적이 풍부한 회사를 파악할 수 있지요.”
○최저가 낙찰제 시행 유보 이끌어내
최 회장은 작년 3월 대한건설협회장을 맡았다. 서울지회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가가 발판이 됐다.
그는 요즘 하루 일과의 3분의 2 정도를 협회 업무에 쏟고 있다. 아침에 협회로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고 오후 2시 이후에야 마포 서교동 회사로 간다. “처음부터 안 했으면 모를까 일단 맡았으면 최선을 다해야지요.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도 큰 보람입니다.”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무엇일까. 중소 건설사 줄도산을 부를 수 있는 최저가 낙찰제 확대를 2년 유보시킨 일을 꼽았다. “최저가 낙찰제는 업체 간 과당 경쟁, 덤핑 입찰을 초래할 게 뻔합니다. 부실 시공과 중소 업체 도산으로 이어지겠지요. 최저가 낙찰제 확대 시행 방안은 유보가 아니라 폐지돼야 합니다.”
건설업종의 앞날은 밝지 않다. SOC(사회간접자본)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데다 공공 공사 발주도 계속 감소할 수밖에 없고, 주택 보급률이 높아져 과거의 호황을 기대하기 어렵다.
건설업계 수장으로서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협회에 미래성장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건설업이 미래 성장산업으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신시장 개척 및 신상품 개발 등의 방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휴식이 건강 비결
양구이를 먹고 나자 보리굴비가 나왔다. 굴비가 제법 컸다. 최 회장은 굴비를 밥 숫가락에 얹어 한 공기를 금세 비웠다. 식욕이 젊은이 못지 않다. 건강 비결이 궁금했다. “충분한 휴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푹 자는 편입니다. 요즘도 하루 7시간씩은 잡니다. 젊었을 때는 8~9시간 잤어요.”
건강 관리를 위해 규칙적인 운동도 빼놓지 않는다고 했다. 1주일에 5일, 하루 1~2시간씩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한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적당히 병행한다고 했다. “운동할 때는 반드시 트레이너와 상의해 가면서 해야 합니다. 잘못 알고 있는 운동법은 아예 모르니만 못하지요.” ◆ 최삼규 회장의 단골집 마포나룻터
횡성한우의 양만 사용…양구이 · 보리굴비 일품
서울 용강동 먹자골목에 있는 마포나룻터는 25년 전통을 가진 맛집이다. 양구이와 보리굴비로 유명하다.
양은 소의 첫 번째 위다. 소 한마리에서 2인분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귀하다. 소의 4개 위 가운데 구워 먹기 알맞은 부위다.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고 육질이 부드러우며 소화도 잘 된다. 박은숙 사장은 “요즘 소의 네 번째 위인 대창이 유행하고 있지만 손님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유의 고소한 맛이 과식을 유발해 동맥경화 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마포나룻터는 횡성 한우의 양을 고집하고 있다. 워낙 귀한 탓에 재료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박 사장은 “양과 곱창을 찍어 먹는 소스와 각종 밑반찬을 만들 때 들어가는 소금이 맛의 비법”이라고 귀띔했다. 소금은 전남 신안에서 직접 가져와 4~5년을 묵힌 뒤 사용한다. 성분의 70%가 사과인 양구이 소스는 달면서 감칠맛이 난다. 양구이를 숯불에 살짝 구워 소스에 찍어 먹는다.
양을 구워 먹고 나서 밥과 곁들여 먹는 보리굴비는 법성포 산(産)이다. 3개월간 바닷바람을 맞힌 뒤 보리쌀 항아리 속에 넣어 말린 굴비로 현지 납품처에서 해마다 1만마리를 사들인다.
박 사장은 “마포 일대 잔칫집마다 불려 다닐 정도로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좋았다”며 “지금 손님들께 사랑받고 있는 것도 사실은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02)715-1255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
최삼규 대한건설협회 회장(72·이화공영 대표)은 자리에 앉자마자 식당 소개부터 했다. 그와 마주한 곳은 마포주차장 옆 양곱창구이 전문점 ‘마포나룻터’. 한강 방향으로 시야를 막는 건물이 없어 식당 2~3층에서는 밤섬이 그대로 내려다보였다.
최 회장이 이 집과 인연을 맺은 것은 10년 전쯤이다. 그는 이화공영 본사가 있는 마포에서 사회활동에 열심이다. 마포구 세정자문위원, 서부지방검찰청 범죄예방위원 등을 지냈다. 마포에서 사업을 일으키고 키운 까닭에 지역사회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맛집도 이왕이면 마포에 있는 곳을 즐겨 찾습니다. 이 집은 지역사회 일을 하는 분들과 찾았다가 맛에 반해 바로 단골이 됐지요.”
최 회장을 본 박은숙 사장(64)이 반갑게 다가왔다. 박 사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밤섬에 살았다”며 “백사장이 펼쳐진 고향 풍경을 잊지 못해 밤섬이 잘 보이는 여기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이 추천한 메뉴는 양구이와 보리굴비였다. 마포나룻터는 양곱창구이 전문점이다. 양은 소의 첫 번째 위(胃), 곱창은 소의 창자다. 박 사장은 “횡성 한우의 양을 구워 먹고 법성포에서 말린 보리굴비로 마무리하면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고 했다.
양을 숯불에 얹자 양 특유의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양구이의 감칠맛을 음미하며 3대를 이어가고 있는 최 회장의 건설업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3대째 이어가는 건설업
국내에서 건설업을 3대째 하고 있는 회사는 드물다. 건설업종은 경기 변동에 따른 부침이 심해 국내에서는 장수 건설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가족사가 궁금해졌다.
건설업을 시작한 최 회장의 부친은 초기에 승승장구했다. 6·25전쟁 이후 재건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진 덕분이었다. 그러나 건설업이 아닌 쪽에 잠깐 발을 담갔다가 어려움에 처했다. 대학을 다니던 최 회장은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중앙대 약대를 다니고 있었어요. 약사가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부친의 권유로 약대에 들어갔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학비 마련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요.”
아픈 기억일 법도 한데 과거를 되돌아보는 최 회장의 표정은 오히려 밝았다. 역경을 스스로 이겨낸 자부심이 배어나는 듯했다. 부친 회사가 폐업하자 친척 형님이 설립한 건설회사에 들어가 현장소장으로 2년 정도 근무했다. 죽기 살기로 일을 배웠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건설회사를 차렸다.
“당시만 해도 건설공사는 수익률이 아주 좋았어요. 공사 한 건만 수주해도 월급쟁이 수입 몇 배를 올릴 수 있었죠. 업체 수가 적어 경쟁도 심하지 않았고요.”
독립한 지 2년 정도 시간이 흐른 1971년 토목·건축 공사업 면허를 가진 건설회사 ‘동지’를 인수했다. 회사 이름을 현재의 이화공영으로 바꿔 40년째 이끌어오고 있다. 지금은 첫째 아들이 회사를 맡아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는 미국 유수 엔지니어링 업체에 근무 중이다.
“회사를 경영하는 첫째는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경기도 화성 선산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를 다녀오곤 합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해법이 떠오를 때가 많다고 하더군요.” 건설업 3대 얘기를 그는 그렇게 마무리했다.
○‘모든 것을 걸어야 산다’
가족사를 얘기하면서도 최 회장의 젓가락은 쉴새없이 양구이를 향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부담감으로 식사를 잘 못하는 이들이 많다. 최 회장은 예외였다. 잘 먹고 낙천적으로 사는 것이 성공 비결일까.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비결을 물었다.
최 회장은 “목숨을 걸고 일했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남들은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하겠지만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간 힘든 시기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족과 임직원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비장한 각오로 이겨냈지요.”
잘 모르는 분야로 외도하지 않은 것도 장수 비결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화공영의 주력 사업은 건축과 토목이다. 업무시설, 연구시설, 공장, 토목공사 등을 해왔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주택사업 호황기를 옆에서 지켜봤다. 남들이 주택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유혹도 느꼈다. 그래도 끝내 주택사업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앞으로도 주택사업을 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했다.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했어요. 시류에 휩쓸렸다면 지금까지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기업공개가 위기 극복 원동력
중견 건설업체는 증권시장에 잘 상장하지 않는다. 건설사 사세는 수주 여부로 결정나고, 수주를 주도하는 측은 대부분 창업자여서 애써 키운 회사를 남에게 빼앗긴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보수적인 업종 특성상 주주들의 이런 저런 간섭을 싫어하는 창업자들도 많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일찌감치 기업공개를 결심했다. 1994년 당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당초 대우증권의 권유로 상장을 결심했습니다. 주주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투명하게 경영해야 탄탄한 회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지요.”
18년 전의 상장 결정은 잘한 선택이었을까. 최 회장은 “상장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주주를 의식하고 내실 경영과 투명 경영에 힘쓴 덕에 외환위기, 미국발 금융위기 등 험난한 파도를 무사히 넘었다는 설명이다.
○시공사 선정 “협회에 문의하세요”
이화공영은 빌딩 공사를 많이 하고 있다. 건설회관 인근 논현동 청담동 등에서 오피스빌딩 공사를 진행 중이다.
최 회장의 수주 비결은 독특하다. 입찰 참여로 직접 일감을 따내기도 하지만 이화공영 공사장을 둘러본 사람들이 건물을 지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건물을 지을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길을 가다 공사장이 있으면 꼭 들러봅니다. 정성 들여 잘 짓고 있다고 생각하면 연락처를 수소문해 시공을 맡기지요. 현장 관리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최저가 낙찰제 유보 이끌어 낸 게 가장 보람"
건축에 문외한이라면 다세대주택 상가 빌딩 등을 지을 때 어느 회사에 맡겨야 할지 막막하다. 최 회장에게 우량 시공사를 고르는 노하우를 물었다.
“대한건설협회에 건설사 시공 실적 자료가 모두 있습니다. 옛날에는 협회에서 ‘추천 시공사 리스트’를 공개했지만 명단에서 빠진 업체들의 반발이 심해 지금은 발표하지 않습니다. 다만 협회에 문의하면 경험과 실적이 풍부한 회사를 파악할 수 있지요.”
○최저가 낙찰제 시행 유보 이끌어내
최 회장은 작년 3월 대한건설협회장을 맡았다. 서울지회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가가 발판이 됐다.
그는 요즘 하루 일과의 3분의 2 정도를 협회 업무에 쏟고 있다. 아침에 협회로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고 오후 2시 이후에야 마포 서교동 회사로 간다. “처음부터 안 했으면 모를까 일단 맡았으면 최선을 다해야지요.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도 큰 보람입니다.”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무엇일까. 중소 건설사 줄도산을 부를 수 있는 최저가 낙찰제 확대를 2년 유보시킨 일을 꼽았다. “최저가 낙찰제는 업체 간 과당 경쟁, 덤핑 입찰을 초래할 게 뻔합니다. 부실 시공과 중소 업체 도산으로 이어지겠지요. 최저가 낙찰제 확대 시행 방안은 유보가 아니라 폐지돼야 합니다.”
건설업종의 앞날은 밝지 않다. SOC(사회간접자본)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데다 공공 공사 발주도 계속 감소할 수밖에 없고, 주택 보급률이 높아져 과거의 호황을 기대하기 어렵다.
건설업계 수장으로서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협회에 미래성장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건설업이 미래 성장산업으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신시장 개척 및 신상품 개발 등의 방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휴식이 건강 비결
양구이를 먹고 나자 보리굴비가 나왔다. 굴비가 제법 컸다. 최 회장은 굴비를 밥 숫가락에 얹어 한 공기를 금세 비웠다. 식욕이 젊은이 못지 않다. 건강 비결이 궁금했다. “충분한 휴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푹 자는 편입니다. 요즘도 하루 7시간씩은 잡니다. 젊었을 때는 8~9시간 잤어요.”
건강 관리를 위해 규칙적인 운동도 빼놓지 않는다고 했다. 1주일에 5일, 하루 1~2시간씩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한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적당히 병행한다고 했다. “운동할 때는 반드시 트레이너와 상의해 가면서 해야 합니다. 잘못 알고 있는 운동법은 아예 모르니만 못하지요.” ◆ 최삼규 회장의 단골집 마포나룻터
횡성한우의 양만 사용…양구이 · 보리굴비 일품
서울 용강동 먹자골목에 있는 마포나룻터는 25년 전통을 가진 맛집이다. 양구이와 보리굴비로 유명하다.
양은 소의 첫 번째 위다. 소 한마리에서 2인분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귀하다. 소의 4개 위 가운데 구워 먹기 알맞은 부위다.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고 육질이 부드러우며 소화도 잘 된다. 박은숙 사장은 “요즘 소의 네 번째 위인 대창이 유행하고 있지만 손님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유의 고소한 맛이 과식을 유발해 동맥경화 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마포나룻터는 횡성 한우의 양을 고집하고 있다. 워낙 귀한 탓에 재료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박 사장은 “양과 곱창을 찍어 먹는 소스와 각종 밑반찬을 만들 때 들어가는 소금이 맛의 비법”이라고 귀띔했다. 소금은 전남 신안에서 직접 가져와 4~5년을 묵힌 뒤 사용한다. 성분의 70%가 사과인 양구이 소스는 달면서 감칠맛이 난다. 양구이를 숯불에 살짝 구워 소스에 찍어 먹는다.
양을 구워 먹고 나서 밥과 곁들여 먹는 보리굴비는 법성포 산(産)이다. 3개월간 바닷바람을 맞힌 뒤 보리쌀 항아리 속에 넣어 말린 굴비로 현지 납품처에서 해마다 1만마리를 사들인다.
박 사장은 “마포 일대 잔칫집마다 불려 다닐 정도로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좋았다”며 “지금 손님들께 사랑받고 있는 것도 사실은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02)715-1255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