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은 ‘퍼(fur)’라는 영화에는 다양한 카메라가 등장한다. 2006년 발표된 이 영화는 실제 사진가인 다이앤 아버스를 주제로 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다이앤 아버스는 사진의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천재 사진가다. 그가 리제트 모델로부터 사진을 배운 1955년부터 1971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천착했던 일관된 대상은 불구자, 기형아, 성도착증자, 기인 등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가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시켰던 1960년대에 이 같은 소재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미술관을 습격해 그의 작품 위에 침을 뱉고 소동을 부린 ‘안티 아버스’들이 있을 정도였다.

○다이앤 아버스의 ‘정방형 사진’

주인공이 사진가인 만큼 영화의 배경인 1950년대에 실제로 쓰였던 옛 카메라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니콜 키드먼이 목에 걸고 나오는 독일의 ‘롤라이(Rollei)’가 만든 카메라 ‘롤라이플렉스(Rolleiflex)’다.

1929년 처음 발매된 이 카메라는 지금까지도 새로운 모델이 나오고 있다. 전면부에 렌즈가 2개 달린 직사각형 모양으로 일반적으로 쓰는 카메라와는 외관이 많이 다르다. 필름으로 빛을 들여보내는 렌즈와 뷰파인더로 연결된 렌즈가 각각 장착된 ‘이안반사식(TLR·twin lens reflex)’ 카메라다. 세로 길이가 6인 중형 필름을 사용하며 가로, 세로 길이가 같은 정방형 사진이 나온다.

대부분 사진의 비율은 3 대 2다. 카메라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널리 쓰였던 35 필름의 크기가 가로 36, 세로 24로 3 대 2 비율이기 때문이다. 필름 카메라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대다수 디지털 카메라들도 이 비율을 따르고 있다. 가로 세로 길이가 다른 사진은 상대적으로 구도를 잡기가 쉽다. 피사체를 어느 곳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안정감을 줄 수도, 긴장감을 줄 수도 있다.

반면 1 대 1의 정방형 사진은 어떻게 구도를 잡아도 안정적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인물이든 풍경이든 긴장감을 주기도 어려울 뿐더러 화면 구성을 짜는 것도 쉽지 않다.

아버스는 되레 진부한 구도를 택했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화면의 중앙에서 정면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포즈도 대부분 차렷 자세다. 인물과 장소만 다를 뿐 모든 사진이 동일한 공식을 보여주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지극히 평범하게 찍는 것으로 아버스는 사진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동정이나 혐오의 감정을 일절 배제한 담담한 시선이야말로 아버스 사진의 핵심이다.

○현실보다 아름다운 파인더

기자도 한동안 롤라이플렉스를 사용했다. 35 필름을 쓰는 일반 SLR(일안반사식) 카메라보다 너덧 배는 큰 글라스 파인더로 바라보는 광경은 실제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보인다. 무엇을 보더라도 모두 작품이 될 것만 같다.

파인더에 비친 장면을 기대하고 셔터를 눌렀다가 나중에 필름에 찍힌 결과물을 보고 실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미화’된 파인더 덕에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좌우가 뒤집힌 파인더 탓에 당황하기도 한다. 바늘구멍 사진기에서 볼 수 있듯이 렌즈를 통과한 빛은 상하좌우가 바뀌어 필름에 상이 맺히게 된다. 일반 SLR 카메라는 빛이 뷰파인더 앞부분의 펜타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상하좌우가 다시 뒤집혀 원래의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반면 롤라이플렉스, 핫셀블라드 등에 장착된 웨이스트 레벨 파인더(가슴께 카메라를 두고 아래로 내려다보는 방식의 파인더)는 렌즈 뒷부분의 거울을 통해 장면의 위아래만 뒤집는다.

때문에 구도를 바꾸려면 파인더에 보이는 방향과 반대로 카메라를 옮겨야 한다. 익숙지 못한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제자리에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신품이 꾸준히 나오고는 있지만 롤라이플렉스를 쓰기 위한 여건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필름을 구하기도 힘들고 현상을 하려면 서울 충무로 등지의 전문 현상소로 보내야 한다. 필름값과 현상비, 스캔 비용 등을 합치면 한 컷당 1000원을 넘어가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지난 19일에는 코닥이 미국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기도 했다. 필름 카메라를 쓸 수 있는 날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