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필름의 대명사 코닥은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인 1975년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개발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카메라로 대표되는 디지털화 흐름에 밀려 파국을 맞았다.

132년 역사의 코닥은 지난 19일 미국 뉴욕 남부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 법정관리를 받게 됐다. 회사의 운명이 연방 파산법 11장, 이른바 ‘챕터11(chapter 11)’ 조항에 맡겨진 신세다.

이런 코닥과 비교되는 기업이 IBM이다. 100년 역사의 IBM도 1990년대 초반 위기를 맞았으나 컴퓨터 회사에서 정보기술(IT) 서비스 회사로 변신하는 데 성공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무엇이 코닥과 IBM의 명운을 갈랐을까.

○1등 코닥의 패러독스

조지 이스트먼이 1880년 설립한 이스트먼코닥은 필름 분야의 선구자로 20세기 혁신 기업의 대명사로 통했다. 1934년 세계 표준이 된 35㎜ 필름을 출시하면서 아날로그 필름 시장을 선도했다. 휴대용 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했고 1969년 닐 암스트롱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해 찍은 사진도 코닥의 첨단 장비 덕분이었다.

코닥은 1970년대 중반에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하는 등 시장 변화 징후도 먼저 읽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당시 잘 나가던 필름 사업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최첨단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방치했다. 아날로그 필름의 제왕은 디지털 흐름을 앞서 개척하는 모험을 원하지 않았다. 이른바 코닥 패러독스(paradox)다.

오랫동안 시장을 독주한 코닥에는 더 이상 창업자 이스트먼이 가졌던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 개척자) DNA가 없었다. 야성이 사라지면서 쇠락이 본격화했다.

적시에 결단하고 그 결정을 강한 추진력으로 밀고 나갈 리더십도 없었다. 1981년 사내 보고서는 디지털 카메라가 불러올 시장 충격을 정확히 예견했지만 경영층은 묵살했다. 위기 징후가 나타나자 리더십의 좌고우면만이 거듭됐다. 화학 및 의료용 테스트 장비 등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가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캐시카우로 키우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코닥은 일반 소비자용과 상업용 프린팅 시장에 진출하며 반전을 노렸으나 때가 너무 늦었다. 제록스와 휴렛팩커드 등이 시장을 앞서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주주들의 목소리에 너무 쉽게 함몰된 것도 문제였다. 미래에 대한 안목이 없다 보니 당장 돈이 되는 사업들을 너무 쉽게 매각하기 일쑤였다.

○변신한 IBM과 버핏의 러브콜

1911년 설립된 IBM은 1980년대까지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였지만 1990년대 들어 위기를 맞았다. 컴퓨터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된 탓이다. 저가 컴퓨터 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입지가 줄어들었고 소프트웨어에선 마이크로소프트가 철옹성을 구축한 상태였다.

IBM은 위기 타개를 위해 코닥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루 거스너와 샘 팔미사노로 이어지는 걸출한 최고경영자(CEO)들은 주력 분야였던 컴퓨터 사업을 과감히 버리는 모험을 택했다.

1993년 CEO로 영입된 거스너는 ‘안주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모든 것을 바꿨다. IBM의 첨단 기술들을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디지털 혁명에 맞춰 재구성했다. 그는 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제 PC는 잊어라. IBM은 앞으로 인터넷에 집중해야 하며 비즈니스맨들의 편한 친구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CEO를 지낸 팔미사노도 변화를 이어갔다. ‘e-비즈니스 온 디맨드(e-Business On Demand)’를 모토로 IBM의 미래를 고객이 요구하는 소프트웨어 제품과 솔루션,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기업으로 설정했다.

IBM은 이 과정에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와 프린터, PC사업부 등 하드웨어 부문을 줄줄이 매각했다. 대신 날로 커지는 인트라넷과 전자상거래 시장을 겨냥한 소프트웨어 솔루션 사업을 주력으로 키웠다. 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앤쿠퍼스(PWC)를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팔미사노 CEO가 취임한 이후 10년간 소프트웨어 및 IT 서비스 회사를 중심으로 100개 기업을 인수했다. 그 결과 지금 IBM의 소프트웨어 및 IT 서비스 사업 비중은 80%를 웃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지난해 107억달러(12조2000억원) 상당의 IBM 주식을 사들였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IBM이 지난 20년간 끝없는 혁신을 통해 IT 서비스와 솔루션, 소프트웨어에 강한 회사로 거듭났다는 게 이유다.

IBM은 지난해 1069억달러 매출에 159억달러 순익을 거뒀다. 매출과 이익 모두 전년 대비 7% 성장한 것으로 시장 예상을 뛰어넘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