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언시(leniency)제’로 알려진 자진신고자 감면제가 있다. 공정거래법을 위반해 담합을 했더라도 자진 신고하면 실형과 과징금을 면제해 주는 제도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 가격을 담합한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대해 4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도 1순위 신고자인 LG전자는 과징금 전액을, 2순위 신고자인 삼성전자는 절반을 감면해 주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고 담합기업이 리니언시제를 남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소비자들이 담합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을 돕기로 했다. 공정위는 또 개인 보험상품의 예정이율과 공시이율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12개 생명보험 회사들에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하자, 1순위 신고로 과징금을 면제받은 기업과 과징금이 가장 적은 회사를 제외한 생보사들이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왜 한 경우는 공정위가 담합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소송을 도와주고, 다른 경우 담합 기업들로부터 피소를 당했는가? 이는 두 경우 리니언시제의 취지가 전혀 다르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리니언시제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일찍이 시행돼 그 효과가 입증되면서 우리나라도 1997년부터 도입되었다. 경제논리로 보면 리니언시제는 카르텔의 불안정성을 강화시킴으로써 카르텔이 유지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카르텔의 불안정성이란 죄수의 딜레마에서처럼 담합을 한 기업들이 모두 함구하는 것보다는 모두 고백을 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인 경우 발생한다. 먼저 고백하는 기업의 처벌을 면해주는 확실한 유인을 제공하면 카르텔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되면서 담합은 쉽게 깨지게 된다.

그런데 카르텔의 불안정성에는 카르텔 참여기업의 수가 많아 개별행동을 적발하기 어렵거나, 개별적인 행위에 대해 신속하고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기 어려워야 한다는 중요한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카르텔에 참여하는 기업의 수가 적을 경우 개별행동이 어려울 뿐 아니라, 또다시 담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리니언시제가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가 생명보험의 경우와 달리 가전제품의 경우 리니언시제가 잘못 이용되었다고 판단하고 소비자 소송을 돕기로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소비자는 왕이라고 내세우던 일부 기업들의 뒷꼼수가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기에 민망한 수준이라 오히려 딱한 생각이 든다.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경제학 교수 tsroh@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