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일자리 날리기' 경쟁하는 정치
삼성전자와 유한양행. 주요 기관들이 조사하는 ‘존경받는 기업’ ‘일하고 싶은 직장’ 순위에서 매년 최상위에 랭크되는 기업들이다. 두 회사의 공통점은 또 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매출과 종업원 수 등 규모가 비슷했다.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이 달라졌다. 유한양행의 2010년 매출은 6493억원, 순이익은 1280억원이었다. 삼성전자는 112조2500억원의 매출에 13조2365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유한양행은 임직원이 2010년 말 기준으로 1530명이고, 137억원의 법인세를 냈다. 삼성전자는 8만4462명을 고용한 가운데 3조1821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위기 극복의 한국 기업史

국민 경제를 살찌우기 위해 필요한 ‘일자리’, 그리고 나라살림의 밑천인 ‘납세’의 기여에서 두 기업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 국내 시장 위주로 사업을 해온 기업과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며 성장해온 기업의 차이다. 오늘의 삼성전자를 낳은 것은 치열한 개방과 경쟁의 대내외 환경이었다. 일부 경영학자들은 삼성전자의 역사를 ‘1993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불량 제품’을 찾아내 ‘화형식’을 치르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주요 임원들을 불러 모아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며 조직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던 해다.

돌이켜보면, 그 즈음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제조업체들에 누란의 위기가 몰아닥치고 있던 때였다. 정부는 국내 유치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유지했던 대일(對日) 전자제품 수입선 다변화 조치 해제를 필두로 유통시장과 종합상사 비즈니스를 전면 개방하는 조치를 잇따라 단행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준비하던 정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일본산 전자제품의 국내 수입을 막았던 빗장이 풀리면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에 안방을 고스란히 내줄 수밖에 없으리란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외국 일류업체들에 유통과 무역업을 허용할 경우의 파장도 마찬가지였다. ‘삼성 개조론’이 그룹 총수의 비장한 화두(話頭)로 대두한 건 이런 배경에서였다. 현대자동차가 선발주자들을 제치고 ‘글로벌 톱 5’로 대도약한 동력(動力)으로 자동차시장 개방이 꼽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모두를 망치는 ‘증오정책’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반(反)시장 경쟁이 심상치 않다. 용도 폐기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창고에서 다시 꺼내들겠다는 데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민주통합당은 집권 공약으로 ‘한·미 FTA 폐기’를 내걸었다. 편법적인 사업 확장과 불법적인 회사 자산 유용으로 시장경제를 먹칠한 일부 기업인들의 행태는 지탄과 일벌백계를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들의 성취는 십중팔구 부당한 결실’이라는 식의 선동적이고 어설픈 일반화로 사회적 편가르기와 증오를 부추기는 건 비겁하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복지·교육의 경로를 넓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사회적 안전장치를 보강하는 일은 건전한 시장경제 육성을 위해서도 중요하고 시급하다. 하지만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우물안 개구리’식 폐쇄·규제 경제로의 회귀는 그것과 전혀 다른 문제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케 하면서 ‘일자리 날리기’로 귀결될 증오정책 경쟁을 벌이는 정치공학꾼들이 개탄스런 이유다.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