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그것도 시베리아 중심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에 대해 일반 사람들은 ‘항상 추운 곳’ 또는 ‘두꺼운 가죽 옷에 곰 사냥을 하면서 사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 기업인들의 관심에서도 항상 뒷전이었다.

그러나 시베리아가 변하고 있다. 추위는 예전과 같지만 소비수준이 높아지면서 한국 업체의 현지 수출이 증가 추세다. 노보시비르스크에는 외국계 거대 쇼핑몰은 물론 렌타 등 하이퍼마켓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자동차 딜러숍, 고급 의류상점, 미용실이 신장개업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 카를로스주니어 같은 패스트푸드점과 현지식당 체인점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평범한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이런 소비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사먹는 케밥과 비슷한 샤우루마 1개가 100루블(4000원)이고, 카를로스주니어의 가장 저렴한 햄버거 세트가 169루블(6800원)이다. 현지인 3~4명과 맥주 한잔하며 저녁이라도 먹으면 한국 돈으로 20만원은 쉽게 들어간다. 이런 식당도 금요일 저녁에 예약 없이 방문하면 퇴짜 맞기 십상이다.

지난해 기준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이 나라 사람들의 공식 평균급여는 약 2만1500루블(86만원)이며, 노보시비르스크 평균급여는 이보다 더 낮은 약 1만8600루블(75만원)이다. 상당수의 급여 수령자들이 개인소득세 감면을 위해 실급여보다 적게 신고하는 사례를 감안할 때 평균급여는 공식 통계치보다 30~50%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 전체 고용시장의 49%가 여성, 51%가 남성이기 때문에 평균적인 가족의 전체 소득은 1인당 평균급여보다 높은 편이다.

그러나 한겨울에는 4인 가족 기준으로 전기, 난방 등 기본적인 아파트 관리비가 약 3000~5000루블(12만~20만원) 정도 들어가는 상황에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스마트 TV, 태블릿 PC 등을 어떻게 거리낌없이 구입하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소비구조를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러시아인은 저축 없이 대부분의 소득을 지출한다. 2010년 기준 러시아 전체 인구의 14.6%만이 소액이라도 저축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의 급여를 소비에 쓰다 보니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높다. 러시아 사회보장국에서 담보하는 연금 규모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현재에 충실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인에게 은행을 통해 미래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질문하면 옛 소련 붕괴 뒤 여러 차례 발생한 은행 관련 사례를 들며 ‘지금까지의 경험상 믿을 수 없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온다. 집안에 현금을 보관하거나 자동차, 부동산 등 추후 현금화가 가능한 물건 구입으로 재테크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 루블화 환율이 널뛰기를 시작하자 보유하고 있던 루블화로 자동차 구입에 나섰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크레디트 문화의 활성화도 또 다른 요인이다. 각종 생활 안정 등을 명목으로 가전제품부터 자동차, 주택에 이르기까지 은행 대출을 통한 구입이 활발하다.

대출 받아 TV·자동차 구입…러시아인들에겐 '오늘'이 중요
신용대출자의 근무 경력과 급여에 따라 이자율은 연 14~40%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그러나 2010년 기준 러시아 전체 인구의 43.28%가 신용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날 만큼 대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에서 생산된 신차의 경우 약 7%의 저리 대출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등 신용대출이 소비 촉진 및 자국 산업 육성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전 세계 1~2위를 다투는 모스크바의 살인적 물가수준은 차치하더라도 대부분의 러시아 도시에서 만만치 않은 물가에 당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 기업들이 러시아인의 생활방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이를 활용, 적극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금하 KOTRA 노보시비르스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