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정당의 이름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영국의 보수당 노동당 등은 이름에서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명을 바꾸는 일도 없다. 군소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카지노당은 도박 활성화를, 녹색잎당은 마리화나 합법화를, 맥주사랑당은 맥주 세금 인하와 좋은 맥주 생산을 주장하는 식이다. 이탈리아 포르노 배우 출신 하원의원 치치올리나가 만들었던 러브당의 핵심 강령은 ‘만인에 대한 사랑’이었다. 내용이야 각양각색이지만 이름만 봐도 뭘 추구하는지 단박 알 수 있다.

반면 우리 정당은 이름과 실제가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민의를 대표해 정당을 만들기보다는 정권과 인물을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해온 탓이다. 당 이름도 툭하면 바뀐다. YS는 신민당, 통일민주당, 민자당, 신한국당 등의 총재나 대표를 지냈다. DJ도 평민당, 신민주연합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등을 이끌었다. 대선 총선을 앞두고 가건물을 뚝딱 지은 후 간판만 바꿔 단 것과 다를 바 없다.

1963년 정당법 제정 이후 당명으로 가장 자주 사용된 건 민주다. 국민 통일 자유 한국 공화 신민 정의 민족도 많이 쓰였다. 정당들의 부침이 워낙 심하다 보니 나중엔 그럴 듯한 당명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게 자민련, 미래연합 같은 ‘연합’이나 국민회의, 국민통합21 같은 대안 당명이다. 제한된 단어를 갖고 조합을 반복하다 보니 정당 이름에서 철학이나 이념적 지향을 찾는 것도 어렵게 돼 버렸다.

논란이 유독 많았던 건 열린우리당이다. 전 국민이 우리편이라는 어감을 가진 절묘한 작명이란 의견도 적지 않았으나 ‘열우당’ ‘열린당’으로 불리는 게 골칫거리였다. 제발 ‘우리당’으로 불러달라고 하소연해도 잘 먹히지 않자 당 홈페이지에 ‘당명 바로잡기 신고센터’를 두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당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차라리 ‘당(黨)’까지 한글로 바꿔 ‘열린 우리 무리’로 하는게 어떻겠냐고 조롱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결국 당명을 바꿀 모양이다. 1997년 11월21일 이회창 후보의 신한국당과 조순 후보의 ‘꼬마 민주당’이 합당해 탄생한 지 14년3개월 만이다. 작년 말 민주당도 민주통합당으로 변경했으니 여야 모두 간판을 바꿔 다는 셈이 됐다. 환골탈태해보려는 의도겠지만 문제는 당명이 관건은 아니라는 거다. 당의 이념과 철학을 벗어난 채 눈앞의 이해득실을 좆아 오락가락하고, 부정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당명을 아무리 바꿔도 소용없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