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공업화 50년] '공해백화점' 태화강의 기적…은어떼 노는 1급수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민관, 하천 살리기 '일심동체'…울산 생태관광명소로 부활
“울산 태화강에서 수영대회가 열린다고요?”
‘공해백화점’이란 오랜 오명을 덮어썼던 울산의 태화강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전국 수영대회가 열린다. 한해 참가자만 2000여명을 넘는다. 대회 캐치프레이즈도 매력적이다. 은어가 떼지어 몰리고 수영할 때 물고기들이 몸을 간지럽게 한다고 해서 ‘은어와 수영을!’이다.
울산 태화강은 7년 전만 해도 물고기가 살 수 없는 5급수였으나 울산시의 복구 노력으로 1급수 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났다.
“7~8년 전만 해도 강에서 나는 꾸리한 냄새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살았제.지금은 여가(여기가) 천국 아인가(아닌가) 싶네.”
7대째 울산에 살고 있는 김연수 씨(74·울산시 남구)는 “태화강을 보고 있노라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그에게 태화강의 모습은 세 가지다.울산이 공업도시로 변하기 이전의 맑디 맑았던 태화강, 공업화 이후 하루가 다르게 오염되던 태화강, 그리고 다시 옛모습을 찾은 태화강이 그것이다.
김씨는 “어린 시절 태화강 물은 그대로 마실 만큼 깨끗했는데 197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잿빛 죽음의 강으로 변했다”며 “2000년 초에는 1만여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고 회고했다.이때부터 울산은 사람 살기 힘든 공해 도시의 대명사로 국민들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지금 울산은 태화강 덕분에 저탄소 녹색성장도시의 모델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년 전부터는 태화강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누치떼가 발견되고 했다. 연어떼도 찾아왔다. 은어와 연어 황어 가물치와 고니 원앙 백로 수달삵 등 모두 427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명의 강으로 부활했다. 하루 평균 1만5000명, 휴일엔 3만명이 찾는 생태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2005년부터 전국 규모의 수영대회와 조정, 카누대회 등이 열려 죽음의 물에서 1급수로 변한 태화강의 기적을 나라 안팎에 전하고 있다.
울산의 대표적 원전설비 전문업체인 일진에너지 이상배 대표는 “10년 전 모습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전했다. 10년 전 서울시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형(이상업 회장)의 권유로 울산과 인연을 맺은 그는 “강물이 악취가 진동하는 시커먼 잉크 같아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생겼는데 지금은 태화강이 울산의 대표적인 생태 자원이 됐다”고 말했다.
태화강의 기적이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한진규 울산시 환경국장은 “태화강 수질을 바꾸지 않고는 울산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울산시 시민 기업이 일궈낸 땀의 결실”이라고 설명했다.
울산시는 물고기가 떼죽음 당한 2000년부터 강으로 유입되는 생활오폐수와 축산분뇨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축산농가 등에 하수관을 설치하고 주거지역에서 발생하는 오폐수가 강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했다.
친수공간 확보를 위해 2004년부터 총 1806억원을 투입, 십리대숲(8만9319㎡)을 복원하고 ‘태화들’(44만2000㎡)이란 생태공원을 만들었다.이 같은 노력으로 태화강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은 1996년 생명체가 거의 살 수 없는 수준(11.3㎎/ℓ)에서 2004년 보통 수준(3.2㎎/ℓ)을 회복했다. 2008년에는 1급수 기준(2㎎/ℓ)까지 되돌아왔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전국의 강 중에선 최고 수질을 자랑한다.
울산상의 회장을 지낸 이두철 삼창기업 회장은 “과거 태화강이 110만 시민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간직해온 생명의 젖줄이었다면 이제는 1인당 5만달러 소득을 앞둔 울산 르네상스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해백화점’이란 오랜 오명을 덮어썼던 울산의 태화강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전국 수영대회가 열린다. 한해 참가자만 2000여명을 넘는다. 대회 캐치프레이즈도 매력적이다. 은어가 떼지어 몰리고 수영할 때 물고기들이 몸을 간지럽게 한다고 해서 ‘은어와 수영을!’이다.
울산 태화강은 7년 전만 해도 물고기가 살 수 없는 5급수였으나 울산시의 복구 노력으로 1급수 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났다.
“7~8년 전만 해도 강에서 나는 꾸리한 냄새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살았제.지금은 여가(여기가) 천국 아인가(아닌가) 싶네.”
7대째 울산에 살고 있는 김연수 씨(74·울산시 남구)는 “태화강을 보고 있노라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그에게 태화강의 모습은 세 가지다.울산이 공업도시로 변하기 이전의 맑디 맑았던 태화강, 공업화 이후 하루가 다르게 오염되던 태화강, 그리고 다시 옛모습을 찾은 태화강이 그것이다.
김씨는 “어린 시절 태화강 물은 그대로 마실 만큼 깨끗했는데 197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잿빛 죽음의 강으로 변했다”며 “2000년 초에는 1만여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고 회고했다.이때부터 울산은 사람 살기 힘든 공해 도시의 대명사로 국민들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지금 울산은 태화강 덕분에 저탄소 녹색성장도시의 모델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년 전부터는 태화강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누치떼가 발견되고 했다. 연어떼도 찾아왔다. 은어와 연어 황어 가물치와 고니 원앙 백로 수달삵 등 모두 427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명의 강으로 부활했다. 하루 평균 1만5000명, 휴일엔 3만명이 찾는 생태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2005년부터 전국 규모의 수영대회와 조정, 카누대회 등이 열려 죽음의 물에서 1급수로 변한 태화강의 기적을 나라 안팎에 전하고 있다.
울산의 대표적 원전설비 전문업체인 일진에너지 이상배 대표는 “10년 전 모습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전했다. 10년 전 서울시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형(이상업 회장)의 권유로 울산과 인연을 맺은 그는 “강물이 악취가 진동하는 시커먼 잉크 같아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생겼는데 지금은 태화강이 울산의 대표적인 생태 자원이 됐다”고 말했다.
태화강의 기적이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한진규 울산시 환경국장은 “태화강 수질을 바꾸지 않고는 울산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울산시 시민 기업이 일궈낸 땀의 결실”이라고 설명했다.
울산시는 물고기가 떼죽음 당한 2000년부터 강으로 유입되는 생활오폐수와 축산분뇨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축산농가 등에 하수관을 설치하고 주거지역에서 발생하는 오폐수가 강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했다.
친수공간 확보를 위해 2004년부터 총 1806억원을 투입, 십리대숲(8만9319㎡)을 복원하고 ‘태화들’(44만2000㎡)이란 생태공원을 만들었다.이 같은 노력으로 태화강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은 1996년 생명체가 거의 살 수 없는 수준(11.3㎎/ℓ)에서 2004년 보통 수준(3.2㎎/ℓ)을 회복했다. 2008년에는 1급수 기준(2㎎/ℓ)까지 되돌아왔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전국의 강 중에선 최고 수질을 자랑한다.
울산상의 회장을 지낸 이두철 삼창기업 회장은 “과거 태화강이 110만 시민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간직해온 생명의 젖줄이었다면 이제는 1인당 5만달러 소득을 앞둔 울산 르네상스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