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인절스 군침만 삼켰던 박성수, 다저스 매물 소식에 "恨설욕" 쾌재
“허…. 그것 참 아쉽네. 이랜드를 미국 전역에 알릴 기회였는데….”

2003년 5월 어느 날. 한 외신보도를 접한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59·사진)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의 손에는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에인절스)가 멕시코계 사업가인 아르투로 모레노에게 1억8400만달러에 넘어갔다’는 기사가 들려 있었다. 박 회장은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매물로 나올 때부터 관심있게 지켜봤지만, 결국 ‘힘에 부친다’며 포기해야 했다.

8년이 흐른 작년 초, 이번에는 ‘LA다저스가 매물로 나왔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2004년 4억3000만달러를 주고 폭스(FOX)사로부터 다저스를 사들인 부동산 개발업자 프랭크 매코트가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구단을 내놓은 것이었다.

박 회장은 쾌재를 불렀다. 에인절스를 압도하는 미국 서부 최고 명문 구단을 손에 넣을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LA에인절스 군침만 삼켰던 박성수, 다저스 매물 소식에 "恨설욕" 쾌재
다저스는 구단가치(8억달러·작년 포브스 발표) 측면에서 뉴욕 양키스(17억달러)와 보스턴 레드삭스(9억1200만달러)에 이은 ‘넘버 3’일 뿐 아니라 지난해 13.5%의 영업이익률(매출 2800억원, 영업이익 380억원)을 올릴 정도로 안정된 이익 구조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의 인기에 힘입어 TV 중계권료도 올라가는 추세다.

박 회장 입장에선 ‘2003년의 한(恨)’을 설욕할 절호의 찬스를 맞은 셈. 다저스 인수를 결심한 박 회장에게 가장 시급했던 건 메이저리그의 생리를 잘 알면서도 12억~15억달러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분담해줄 파트너를 찾는 일이었다.

누구와 손을 잡을지 고민하던 박 회장의 머릿속에 불현듯 프로 야구선수 ‘박찬호(39)’란 이름이 떠올랐다. 10년 가까이 LA다저스에서 투수 생활을 한 만큼 누구보다 다저스 내부사정에 밝은 데다 1979년부터 1998년까지 다저스 구단주로 활동했던 피터 오말리(75)와의 친분도 각별하다는 점에서다. 오말리는 공·사석에서 박찬호를 ‘셋째 아들’이라고 부른다.

박 회장과 박찬호의 만남은 작년 가을께 이뤄졌다. 이랜드 관계자는 “박 회장이 ‘다저스를 꼭 손에 넣고 싶다’며 인수의지를 밝히자 박찬호가 ‘한국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돕겠다고 자청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랜드와 오말리는 이렇게 박찬호를 연결고리로 한 팀이 됐다. 컨소시엄의 최대주주는 이랜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랜드 컨소시엄은 지난 1월27일 다른 7~8개 컨소시엄과 함께 1차 심사에 통과했다. 최종 인수자는 오는 4월 결정된다. 이번 인수전엔 ‘조 토레(전 LA다저스 감독)+릭 카루소(부동산 개발업자)’ 컨소시엄, ‘톰 배랙(콜로니캐피털 대표)+레오 힌더리(뉴욕양키스 케이블 채널 창업자)’ 등이 함께 경쟁하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랜드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크려면 미국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박 회장의 생각”이라며 “다저스 인수에 성공하면 미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리한 인수·합병(M&A)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작년 영업이익이 5500억원에 달한 데다 필요하면 일부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다”며 “계열사 지분을 수조원대에 사겠다는 투자제안도 받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오상헌/서기열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