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그물로 건져올린 삶의 詩
‘왜 너는 늑대가 아니라 늑대가 다니는 황폐하고 고독한 길이 되려고 하느냐 네가 스스로 네 마음을 극소화시켜 횡경막 아래 숨기는구나 (중략) 나는 서리고 너는 얼음인가 나는 꽃이고 너는 열매인가 나는 죽고 너는 사는가 나는 갈 길이고 너는 돌아오는 길인가’(시 ‘잎과 열매’ 중)

시인 장석주 씨(57·사진)는 7~8년 전 처음으로 《주역(周易)》을 읽고 “느닷없이 따귀를 연거푸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노자,장자 등 동양 사상에 천착해온 그는 주역으로 공부의 영역을 넓혔다. 자연의 천변만화를 음양의 이원론으로 풀이한 주역은 자연스레 그의 시적 프레임이 됐다.

그의 열다섯 번째 시집 《오랫동안》(문예중앙)은 이렇게 탄생했다. 시집에 담긴 55편의 시는 모두 ‘주역시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주역을 읽고 얻은 깨달음을 쓴 시는 아닙니다. 시의 한계를 깨보자는 생각에서 주역의 세계관과 화법의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은 있었죠. 시집으로 나온 뒤 보니까 7~8년간 읽었던 주역의 사유체계가 자연스럽게 들어와 표출됐어요. 음과 양이 하나 안에 있듯이 그런 게 그렇다, 그렇지 않다 등 모순된 화법들 같은 것 말이죠.”

‘하나는/둘,/안이면서/밖./누군가를 베면서/깊이 베인 자.’(‘강의 서쪽’ 중)

‘이미 얼면/얼지 않네./늦지 않으려면 늦어야 해./가지 않으려면 가야 해./오지 않으려면 와야 해./죽지 않으려면/죽어야 해.’(‘달 아래 버드나무 그림자’ 중)

그의 시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노래하지만 울림은 크고 깊다. 주역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시 속에 녹아들어 삶의 찰나를 건져 올리는 그물이 됐다. 그는 “주역을 읽으면서 부딪친 건 무지의 캄캄함이었다”며 “깨달음이란 정말 가당치 않다”고 말했다. 주역을 많이 안다고 하면 십중팔구 가짜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주역 64괘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현관(玄關)의 발치에도 가보지 못했다”며 “주역시편은 ‘배로 기는 뱀 발이며 개밥에 얹힌 도토리’에 지나지 않다”고 했다.

“주역 해설서는 거의 다 읽었어요. 그런데 주역은 너무나 넓고 불가사의해서 객관적으로 일치된 해석이란 있을 수 없어요. 저마다의 체험과 시각으로 읽으면 됩니다. 시도 마찬가지예요. 100명이 시를 읽으면 100가지로 달리 읽어야 하는데, 우리는 학교에서 시를 한 가지로 읽도록 잘못 배우죠.”

그는 “주역시편은 정교하게 해석해서 이해하려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