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을 순환출자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한다. 예컨대 이건희 삼성 회장 가족이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를 통해 낮은 지분으로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회장이나 삼성그룹이 처음부터 이 같은 순환출자 구조를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7년 말까지만 해도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 회장→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단순했다.

지금 형태로 기업지배구조가 바뀐 것은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에 부정적이었던 김대중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업과 언론을 분리해야 한다는 정부 측의 압력이 지속되자 삼성은 1999년 중앙일보를 계열분리하면서 중앙일보의 에버랜드 지분을 삼성카드가 사들여 지금과 같은 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그룹 지주회사가 삼성생명에서 삼성에버랜드로 변경된 것 역시 같은 해 이 회장이 삼성자동차 부실 책임을 지고 삼성생명 주식 450만주를 채권단에 내놓은 데서 비롯됐다. 그 전까지 이 회장은 지분 10%를 가진 삼성생명 최대주주였다.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원칙’에 따라 이 회장은 삼성차의 부실에 무한책임을 질 의무가 없었지만 정부와 채권단의 압력에 굴복, 결국 생명 주식을 사재출연 형태로 내놓게 된 것이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도 1998년 외환위기 와중에 부실기업 매각을 서두르던 정부 정책에 따라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형성됐다. 이후 현대모비스 주요 주주이던 현대중공업이 옛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의도하지 않게 현대모비스가 현대차를 지배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의 순환출자도 삼호중공업 인수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 순환출자

3개 이상의 회사가 순환식으로 엮여 상호출자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A→B→C→A’의 형태로 출자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자산 합계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에 대해 계열사끼리 서로 지분을 소유하는 방식의 상호출자(A↔B)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금지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