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살인한파…곡물·유가 살떨리게 올랐다
영하 30도의 극한 추위가 열흘가량 지속된 유례없는 한파로 유럽 경제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밀 대두(콩) 등 곡물과 원유 가격이 급등,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가스 수출량을 줄이면서 이탈리아 등 유럽지역의 공장 가동이 위협받기 시작해 국가 간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재정위기로 코너에 몰려 있는 유럽 경제가 이번 한파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된다.

◆브렌트유 가격 6개월래 최고

영국 런던 국제상품거래소(ICE)에서 3월 인도분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6일(현지시간) 배럴당 115.93달러를 기록, 최근 6개월 중 최고치로 뛰어올랐다. CNBC는 “추위가 지속되면서 난방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브렌트유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연가스 가격 역시 가파른 상승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에 7일 공급된 천연가스 가격이 섬(가스 공급량 측정 단위)당 93펜스로 2006년 3월 이후 거의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에너지 가격뿐 아니라 밀 대두 등 곡물 값도 오르고 있다. 계속된 한파로 수확량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밀 선물의 경우 6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전날보다 1.2% 상승한 부셸당 6.68달러(3월 인도분)에 거래를 마쳤다. 대두 선물 값은 부셸당 12.33달러(3월 인도분)를 기록했는데, 이는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가격이다.

◆러시아, 가스 공급 30% 줄여

이번 한파는 북극 지방의 한기를 가두는 제트기류가 약해졌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북극의 한기가 약해진 제트기류를 뚫고 내려와 유럽과 아시아 등 북반구 국가들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 몇몇 지역의 기온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스위스 그라우뷘덴의 기온은 최근 영하 35.1도까지 하락했고, 체코 크필다는 영하 39.4도까지 떨어졌다. 외신들은 유럽 전역에서 한파로 인한 사망자 수가 7일 기준 450여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에서 130여명, 폴란드에서 50여명이 목숨을 잃는 등 동유럽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 북부 네이멍구는 기온이 영하 50도로 떨어져 얼어죽는 소와 양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국영 가스기업인 가즈프롬은 유럽 수출량을 30% 줄였다. 러시아도 이상기온으로 난방 수요가 급증해 해외까지 가스를 공급해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 천연가스 주요 수입 국가는 이탈리아 독일 루마니아 등이다.

코라도 파세라 이탈리아 경제개발부 장관은 현재 상황을 ‘치명적’이라고 표현했다. 이탈리아 최대 에너지기업 에니(ENI)의 파올로 스카로니 최고경영자(CEO)는 “이르면 9일부터 기업 고객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위기 해결을 위해 가스 공급선을 알제리,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30여명이 한파로 사망한 루마니아에서는 6일 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CNN은 “에밀 보크 총리가 2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공공부문 임금을 25% 삭감해 국민들의 신임을 잃은 데다 한파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보도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