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상정예문도 증도가자로 인쇄"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증도가자(證道歌字)가 1234년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 1241년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등 고려시대 주요 문헌들을 인쇄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증도가자는 고려 고종 26년(1239) 수도 개경에서 발간된 목각 번각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보물 제758호)를 인쇄한 활자로 직지심체요절(1377)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김성수 청주대 교수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고려의 금속활자와 세계 인쇄사의 재조명’ 국제학술대회의 주제발표 ‘한국 금속활자의 시원과 13세기 전후 간행도서의 분석’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는 “13세기 개경에는 관 주도로 만들어진 금속활자가 있었다”며 “이 활자로 증도가를 비롯한 여러 문헌을 인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금상정예문, 동국이상국집에 주목하며 “이들 책은 별도의 활자로 찍었다는 게 정설이지만 남명송증도가와 서체가 동일해 모두 같은 금속활자로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명송증도가와 동국이상국집의 서체는 한 사람이 일괄적으로 서사한 것처럼 전개됐다”며 “가지런하게 잘 조판된 책의 한 페이지처럼 홀수행과 짝수행의 글자체와 크기 등이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증도가자를 비롯한 초기 한국 금속활자의 원천 기술은 1102년(숙종 7년)의 고주법(鼓鑄法) 제정과 해동통보(海東通寶) 주조에서 비롯됐다”며 “한국 금속활자 주조의 시원은 고려 동전 해동통보가 주조된 1102년에서부터 증도가자로 남명송증도가를 인쇄한 13세기 초기 사이에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중국과 일본, 유럽의 금속활자 인쇄 역사도 살폈다. 일본에 전해진 금속활자본 ‘십칠사찬고금통요’도 소개됐다.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 일본 레이타쿠대 교수는 ‘일본 현존 조선 초기 활자 인본’을 주제로 일본에 있는 조선 초기 활자 인본 중 계미자본 ‘십칠사찬고금통요’, 경자자본 ‘사기’ ‘사학지남’, 갑인자본 ‘춘추경전집해’ 등에 대해 발표했다.

계미자본 ‘십칠사찬고금통요’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에바 벤츠 전 독일 구텐베르크 박물관장은 ‘유럽 서적 인쇄의 시작’, 중국 베이징대 도서관의 류다쥔 연구관은 ‘중국 활자 인쇄술의 침체와 부흥’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