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는 1986년 처음 도입된 후 정권 교체기나 선거 때마다 여덟 차례나 모습을 바꿔가며 폐지와 부활을 거듭했다. 대기업으로 쏠린 경제력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지만 기업의 투자의욕과 고용창출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4월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올해도 여지없이 각 정당의 선거공약에 포함됐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폐지한 이 제도의 부활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대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 ‘슈퍼 출총제’ vs 새누리 ‘반대’

출총제에 대한 여야의 입장 차이는 비교적 명확하다. 새누리당은 부활에 반대하는 반면 민주통합당은 부활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대기업 규제 수단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순자산액 대비 출자총액 상한비율과 적용 기준을 놓고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다. 구체적으로 상한비율을 2009년 폐지 이전인 40%로 할지,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25%로 할지 검토 중이다. 또 출총제를 10대 그룹에만 적용할지, 30대 기업이 모두 포함될 수 있도록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을 기준으로 할지를 놓고도 논의 중이다.

새누리당은 출총제 부활에 반대하고 있다. 대신 중소기업적합업종 보호안을 공정거래법에 법제화하는 등 대기업의 팽창을 규제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10조원 넘으면 30대 그룹까지 포함

출자총액 한도비율을 25%로 정하게 된다면 10대 그룹 중에서 이 기준에 걸리는 곳은 현대중공업과 한화 등 두 곳 정도다. 삼성, 현대차, 롯데, 한진 등은 출자비율이 20% 수준을 넘지 않는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SK, LG, GS, 두산 등은 출총제 자체의 적용을 받지 않아 해당 사항이 없다.

기준을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으로 할 경우 출총제 적용대상에 30대 기업 대부분이 포함된다.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10대 그룹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출자비율이 20% 미만이어서 큰 의미가 없다”며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출총제 무용론이 제기된 것도 지나치게 예외조항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2001년 출총제가 부활할 당시 △사회간접자본시설(SOC) 사업 △기업구조조정 △외국인투자 유치 또는 중소기업과의 기술협력을 위해 주식을 취득한 경우 등에 대해선 출총제 예외를 인정받았다. 2004년엔 △남북교류사업 △차세대 성장동력사업 등이 예외조항에 추가됐다.

◆정치 상황에 따라 폐지와 부활 반복

전문가들은 설사 야당이 제시한 ‘슈퍼 출총제’가 탄생한다 하더라도 결국 ‘누더기 법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지금까지 출총제의 역사가 ‘도입→완화→폐지’ 패턴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실제 전두환 정부가 1986년 출총제를 도입했을 때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다. 정권 존립이 위태롭다고 느끼던 차에 1980년대 초 이른바 ‘3저 호황(저물가-저금리-저환율)’을 업고 급성장을 거듭하던 대기업 집단에 칼 끝을 겨눔으로써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측면이 강했다. 당시 계열사 출자 한도는 당초 40%였지만, 1994년 25%로 강화됐다.

출총제는 1998년 본격화된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줄도산 사태에 내몰리자 폐지됐다. 당시 정부는 기업들의 방만경영을 경제위기 주범으로 지적했고 이에 따라 부실 대기업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댔다. 출총제 폐지는 이 같은 채찍 대신에 주어진 당근이었다. 출총제는 1999년 다시 도입됐지만 2007년 출자한도 완화에 이어 2009년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최근 국내외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이 출자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후진적 규제라는 지적도 있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영환경 아래에서 기업들도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쟁력 있는 기업에 출자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결국 민주당 안이 받아들여져 출총제가 예외조항 없이 부활된다 해도 기준은 완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 출자총액제한제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순자산의 일정 비율을 초과해 국내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계열사와 비계열사를 불문하고 국내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1986년 도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