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전문가 예측과 거꾸로하면 돈 법니다"
“라오스증권거래소 이사장이 갑자기 방한해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전문가 예측과 거꾸로하면 돈 법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맞은편 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한정식집 대방골. 고즈넉한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중년 신사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들어섰다.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다. 라오스거래소는 한국거래소가 49%를 출자해 작년 1월 문을 열었다. 라오스거래소 이사장이 사전에 약속없이 불쑥 방한했지만 김 이사장은 일정을 쪼개 그를 만났다.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한 것 아닙니까. 라오스거래소 이사장이 초청하니 조만간 무박 일정으로라도 라오스에 다녀올까 합니다.”

충북 괴산에서 나고 자란 ‘촌놈’ 김봉수의 매력이다. 인연을 소중히 하는 데다 소탈하고 친근감이 있어 누구나 가까이 하고 싶어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부지런함까지 갖췄다. 그가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를 거쳐 첫 민간인 출신 거래소 이사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김 이사장은 사석에서 “한국거래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CEO로서 손발이 묶여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거래소의 외연을 해외로 넓혔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외연을 확대해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거래소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희망도 이런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동남아 이어 중앙아시아로 ‘금융영토’ 확장

여의도 증권시장의 수장이 손님으로 와서일까. 남도 한정식집 대방골의 상차림은 평소보다 더욱 푸짐해 보였다. 입맛을 돋우는 매생이국에 이어 전과 삭힌 홍어, 삼겹살 수육, 묵은 김치가 어우러진 삼합이 차례로 올라왔다. 바닷가 바위에서 딴 파래로 만든 감태김치와 꼬막 등이 밑반찬으로 곁들여졌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벌교산 꼬막은 양념이 적당히 배어 짜지 않고 감칠맛이 있었다.

“상큼하니 입맛을 당기지 않습니까. 매생이국도 그렇고 삼합도 끝내줍니다.”

삼합을 한 젓가락 집어 든 김 이사장은 해외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국이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해 300년 넘게 영화를 누렸잖아요. 제 꿈은 한국거래소를 24시간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지난달 도쿄거래소와 교차 거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도 ‘해가 지지 않는 거래소’의 첫걸음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홍콩 대만 인도 등 아시아권 거래소에 이어 북미 중남미 거래소와 교차 거래를 추진한다면 말 그대로 24시간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이 되겠죠.”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한 거래소 시스템 수출에는 속도가 붙고 있다. 라오스거래소를 개장한 데 이어 지분을 투자한 캄보디아증권거래소도 다음달 문을 연다. 우즈베키스탄과는 IT 시스템 수출 계약을 맺었다. 미얀마 몽골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등과도 협상을 진행 중이다.

김 이사장이 ‘거래소 세계화’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동안 갈비와 새우, 전복요리가 나왔다. 흑산도 전복을 통째로 조려낸 전복은 달짝지근하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주인은 재료를 모두 전라남도 현지에서 조달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해산물은 특히 재료가 신선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질문이 이어졌다. 선진국 거래소와의 경쟁을 뚫고 해외 시장을 하나둘 개척해 나가는 비결은 뭘까. 김 이사장은 진정성을 갖고 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옛날에 우리가 선진국에 가서 무시당하고 기분 나빴던 것 생각해 보세요. 개발도상국의 사업 파트너를 정성껏 대접하라고 직원들에게 늘 강조합니다.”

동남아 국가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강대국에 침략을 당한 경험이 있는 개도국들은 선진국이 들어오면 ‘경제 수탈’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이 사회공헌 활동이다. “의료나 교육 프로그램을 꼭 함께 갖고 갑니다. 지난달에도 대학생 봉사단 30명을 캄보디아에 보내 의료·교육 봉사활동을 했죠.”

◆노력하면 공공기관 제약 극복할 수 있어

‘글로벌 거래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공공기관 지정 해제 문제가 화제가 됐다. 정부가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놓고 경영·인사상의 각종 규제를 가하는 한 거래소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다소 무거운 화제가 나오자 김 이사장은 대답 대신 소곡주를 한잔 권했다. 충남 서천이 원산지인 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불린다. 맛이 달짝지근하고 빛깔도 고와 부담없이 마실 수 있지만 한잔 두잔 마시다 보면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취한다고 해 그런 별명이 붙었다는 설명이다.

김 이사장은 거래소 이사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30여년을 증권사에서 일했다. 키움증권 대표이사로 일한 기간만 8년이다. 민간 기업 CEO와 공공기관장의 차이를 몸소 느끼고 있다.

“증권사 CEO일 때는 직원을 필요할 때 늘렸다가 필요 없을 때 줄이는 것이 가능했어요. 공공기관이 직원을 늘리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요.”

거래소는 올해 80명을 새로 뽑을 계획이었지만 정부 방침에 따라 40명만 채용했다.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다. 동시다발적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하다 보니 대규모 인력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정원 제한에 걸려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뽑지 못하고 있다.

“IT 시스템을 수출하려면 한 나라에 20명 이상 가서 일을 해야 합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엄청나죠. 사람을 더 뽑지 못하니 진출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소곡주를 권했다. 은근히 공공기관의 문제점을 더 지적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김 이사장은 거래소 자체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기관으로서 거래소 스스로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는 세간의 시선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받아들였다. 김 이사장이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초콜릿 복근’과 ‘S라인 몸매’라는 말을 언급하며 거래소의 군살을 빼고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108배로 운동과 정신수양을 함께 하죠”

술이 몇 순배 돌자 김 이사장은 개인사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충북 괴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당시 괴산은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이었다. 키움증권 사장과 거래소 이사장에 선임됐을 때는 고향 마을에 플래카드도 내걸렸다고 한다.

"매일 새벽 4시 일어나 108배… 운동·정신수양돼요"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전문가 예측과 거꾸로하면 돈 법니다"
김 이사장의 장인은 원래 함경북도 강계가 고향이었지만 월남해 경북 포항에 정착했다. “경상도 충청도 함경도까지 인연이 걸쳐 있는 덕분에 팔도 사투리를 다 할 줄 안다”며 그는 웃었다.

부인은 김 이사장을 5년 전 불교의 세계로 이끈 사람이다. 불교와 인연을 맺은 후 김 이사장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108배를 올리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출장 가서도 빼놓지 않는 새벽 의식이다. 김 이사장의 108배 예찬론이 이어지던 중 대방골의 대표 음식인 보리굴비와 녹차물밥이 나왔다. 여름에는 차가운 녹차, 겨울에는 따뜻한 녹차에 만 밥에 굴비 한 점을 얹어 먹는 맛이 일품이란다.

대방골은 서울 대방동 옛 공군본부 앞에 있던 시절부터 김 이사장의 단골집이었다. 20년 전부터 대방동에 살고 있는 김 이사장은 “집사람이 심술이 나 있는 것 같으면 외식이나 하자고 하고 같이 가서 먹던 곳”이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법조인 꿈 접고 증권업계로

김 이사장은 원래 법조인을 꿈꿨다. 법대를 졸업한 후 사법고시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집안 형편상 고시에 오래 매달릴 수 없었던 그는 취직을 결심했다. 1976년 효성증권 공채 1기로 입사, 증권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80년대에는 ‘채권의 1인자’로 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1970년대 말 일어난 ‘건설주 파동’이 채권에 관심을 가진 계기였다. “연일 상한가를 달리던 건설주가 어느날 갑자기 하한가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고객 항의를 견딜 수 없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담배까지 피웠습니다. 증권사가 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는 상품이 주식밖에 없을까 고민하던 중 채권을 알게 됐죠.”

직장인으로서 김 이사장이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윗사람이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하라’는 것이다.

◆재테크는 간단할수록 좋다

30여년 증권맨인 김 이사장은 주위에서 재테크 비법을 묻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의 노하우는 의외로 단순하다. “3분의 1은 은행 적금, 3분의 1은 상장지수펀드(ETF), 나머지는 레버리지 ETF에 매달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요즘 레버리지 ETF에 투자합니다.”

시장은 애널리스트들이 전망하는 것과 반대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역발상 투자법’도 소개했다. “앞으로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 정부가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대책을 내놓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면 경제가 의외로 좋아질 수도 있죠. 그래서 애널리스트 전망과 반대로 투자하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김 이사장은 오래전부터 은퇴를 준비해왔다. 고향인 괴산군 부흥리에 동네이름을 따 ‘분저울 캐빈’을 지어 놓고 주말마다 찾아간다. 온갖 채소와 곡식도 직접 키워서 거둬들이고 있다. “자연이 갖는 무한한 생명력이 나를 도취케 해 회사와 도시생활에서 생긴 온갖 번뇌와 시름을 한순간에 날려줍니다. 4월에 감자를 캐는데 그때 고향으로 한번 초대하겠습니다.”


김봉수 이사장의 단골집 대방골

보리굴비·낙지·홍어 유명한 남도음식 전문점

보리굴비로 유명한 남도음식 전문 한정식집이다. 전남 영광 앞바다에서 잡힌 굴비가 대방골을 찾은 손님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1년3개월이 걸린다. 굴비를 잡아 냉동보관했다가 바닷가에 널어 말리고 다시 냉동해 보관하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요리 과정도 길다. 쌀뜨물에 4시간을 담갔다가 건진 굴비를 솔잎 다시마 무 생강 등을 넣은 육수에 3시간 동안 찐다. 이렇게 요리한 굴비를 녹차에 만 밥과 함께 먹는다.

대방골은 작년 가을 서울 대방동에서 여의도 국회 맞은편으로 옮겼다. 과거에도 정치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여의도로 이사오면서 정치인은 물론 증권맨들이 즐겨 찾는 여의도의 대표 맛집으로 꼽힌다.

보리굴비 외에 낙지 전복 홍어 전어 등을 재료로 한 다양한 음식을 선보인다. 굴비정식을 비롯한 코스요리의 가격은 3만6000~8만원이고, 점심 메뉴는 3만6000~5만원 선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문을 연다. (02)783-4999, www.daebanggol.co.kr

손성태/유승호/김유미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