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문학의 맛깔스런 소재…'詩의 밥상' 음미해 볼까
‘밥 하면 말문이 막히는/밥 하면 두 입술이 황급히 붙고 마는/밥 하면 순간 숨이 뚝 끊기는//밥들의 일촉즉발/밥들의 묵묵부답//아, 하고 벌린 입을 위아래로 쳐다보는/반쯤 남긴 밥사발의//저 무궁, 뜨겁다!//밥’(정끝별 시 ‘까마득한 날에’ 전문)

음식은 삶과 맞닿아 있는 존재다. 시인들에게는 각별한 시의 재료이기도 하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는 봄호에서 기획특집 ‘내 시에 담긴 음식-음식을 쓰고 시를 맛보다’를 마련했다.

홍윤숙 김종해 김광규 유안진 이수익 이건청 황학주 김승희 박주택 안도현 이재무 정끝별 김언희 손택수 최금진 고영민 등 16명이 시와 산문으로 차려낸 맛깔스런 ‘시의 밥상’이다. 묵은 김치, 아귀탕, 쌀밥, 흰죽, 갱죽, 감자, 홍어 등 음식들에 버무려진 눈물과 그리움, 추억을 시로 만날 수 있다.

평북 정주 출신인 홍윤숙 시인은 학창시절 고향에 내려가 먹던 묵은 김치 맛을 추억한다.

‘내게도 시퍼렇게 잎이며 줄기/참대같이 푸르던 날들이 있었더니라/그 빳빳하던 사지를 소금에 절이고 절여/인고와 시련의 고춧가루 버무리고/사랑과 눈물의 파, 마늘 양념으로 뼈까지 녹여/일생을 마쳤다 타고난 목숨의 이유대로’(‘묵은 김치 사설’ 중)

그는 “양념이란 것도 별로 없다. 파도 흔치 않아 마늘 다진 것에 백화젓(새우젓)이면 그만이다. 무채 따위는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저 잘 삭은 배추나 무 천연의 맛, 약수 같은 시골 물맛, 김치광 깊숙이 파묻은 흙의 맛,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북국의 쩍쩍 얼어붙는 얼음 맛, 눈 맛, 바람 맛이라고나 할까.

정끝별 시인은 ‘까마득한 날에’에서 밥을 뜨거운 ‘무궁’이라 노래한다. 그는 “밥은 슬프고 따뜻하고 존엄하고 비루하다. 밥이라는 주어는 어떤 술어든 다 수용할 수 있다. 그만큼 밥은 전체 또는 삶”이라고 말한다.

이수익 시인은 ‘보하얀 쌀밥’에 대한 존엄성을 시에 담아냈다. ‘크낙하게 슬픈 일을 당하고서도/굶지 못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슬픔일랑 잠시 밀쳐두고 밥을 삼켜야 하는 일이,/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밥을 삼켜야 하는/저 생의 본능이’(‘밥보다 더 큰 슬픔’ 중)

고영민 시인은 ‘흰죽’이라는 시에서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때는/비싼 정찬을 먹을 때가 아니라/그냥 흰죽 한 그릇을 먹을 때’라며 어머니가 끓여준 죽을 추억한다. 안도현 시인은 ‘갱죽’에서 가난의 궁핍함을 시로 승화해낸다.

‘하늘에 걸린 쇠기러기/벽에는 엮인 시래기//시래기에 묻은/햇볕을 데쳐//처마 낮은 집에서/갱죽을 쑨다//밥알보다 나물이/많아서 슬픈 죽//훌쩍이며 떠먹는/밥상 모서리//쇠기러기 그림자가/간을 치고 간다’

그는 “음식은 식욕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고향에 대한 기억을 구체적이고도 감각적으로 재생한다”며 “고향의 풍경이 그려내는 시각의 유혹도, 방언이 잡아당기는 청각의 매혹도 음식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고 말한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