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운노조, 민자부두에까지 노무독점권 요구
100년 이상 울산항 부두에서 노무공급권을 가져온 울산 항운노조와 노무공급을 거부하는 민간 부두운영사 태영GLS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법적대립으로 비화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울산신항 남항에 지난해 12월 순수 민간자본으로 부두를 건설한 태영GLS가 자체 인력으로 항만 하역에 들어가려는 것을 노조가 저지하면서 비롯됐다. 노조는 지난 3일부터 부두 입구를 봉쇄하며 차량 진출입을 막아 인근의 이영산업기계 등이 원자재 수급차질로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고 있다.

회사 측은 업무방해 혐의로 항운노조 간부 5명을 고소한 데 이어 법원에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양측 간 갈등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민간부두의 노무공급권은 누가

노조는 최근 울산 항만청 중재로 열린 회의에서 “노무공급권은 항운노조의 고유권한인 만큼 태영도 기존 부두에 적용되는 임금과 채용 규모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영 측은 “항만노조가 하역일에 대해 일괄 도급을 주든지, 아니면 100여명의 인력을 상용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400억원을 투자한 순수 민간 시설인데 노임이 과다하게 비싼 항운노조의 노무공급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회사 측 관계자는 “노조 요구대로라면 노조원 1인당 연봉 7200만원(울산항운노조 통상임금 기준)을 줘야 한다”며 “1년 매출목표가 105억원인데 노조 임금으로 72억원을 달라는 주장은 폐업하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물류업계와 항운노조 간 대리전 양상

노조는 “태영GLS는 전국 민자부두로는 처음으로 항운노조의 노무공급을 거부한 사례인 만큼 절대 좌시할 수 없다”며 다음주 중 전국 항운노조와의 연대 집회를 추진하고 나서 자칫 양측이 정면 충돌로 치닫을 조짐이다.

노조는 또 “정부가 무분별한 항만개발 정책으로 전국 항만에 민자부두 개발이 남발되고 있다”며 정부정책까지 문제삼고 나섰다.

태영GLS 측도 “최근 고용노동부 질의를 통해 하역회사가 직접 근로자를 고용해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최근 부산고법이 지난해 2월 온산항 부두운영사인 정일컨테이너터미널이 울산항운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항만 출입금지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서’에서 “부두운영사와 항운노조 간에는 종속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다고 할 수 없다”는 1심 판결을 유지하는 결정을 내린 점을 들어 노조 요구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가 사태 악화

노조는 정일컨테이너터미널 법원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하는 동시에 노무공급권을 관습법으로 인정해 달라는 본안 소송을 추가로 내기로 했다. 노사가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을 빚는 데는 항만의 변화속도를 따라 잡지 못하는 현행법이 한몫을 하고 있다.

노무공급권을 다루고 있는 현행법은 직업안정법(33조) 등이 있지만 민자부두의 노무공급권을 규정한 법률은 전무하다. 여기다 100년 이상 항만하역을 항운노조가 독점하면서 노무비리, 항만경쟁력 저하와 같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지만 노조의 노무공급권에 대해 손을 대지 못하는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가 이번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 노무공급권

각 지역 항만에서 이뤄지는 육·해상 하역작업을 항운노조 소속 근로자들만이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관행. 이 때문에 노조가 실질적으로 하역작업 근로자들의 채용권을 쥐고 있다. 1945년 이후 노무공급권을 독점해온 항운노조는 전국 항만에 18개 노조, 소속 근로자 1만5800여명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