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어카운트가 자산배분과 위험관리에 중점을 두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작년 조정장을 거치면서 위험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진 데다 기존 자문형 랩의 성과에 실망한 고객들이 대거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증권사들은 하나의 계좌를 통해 자문형 랩을 비롯해 국내주식형 및 채권형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 가능한 랩어카운트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통합자산관리로 이탈 막는다

수익률보다 위험관리…'랩'이 달라졌다
삼성증권은 통합투자관리형 랩어카운트 서비스인 ‘U시리즈’를 15일 출시했다. 미국 고액자산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통합자산관리계좌(UMA·unified managed account)’를 적용한 것. 하나의 계좌에서 자문형 랩, 국내주식형 ETF, 채권형 펀드, 현금성 자산에 고객의 자산을 분산투자하는 게 특징이다. 고객 성향에 따라 U1(초저위험·주식비중 최대 10%)에서 U10(고위험·주식비중 최대 100%)까지 5단계로 나눠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준다. 시장 상황에 따라서도 포트폴리오 구성이 달라진다. 같은 U10 등급이라도 약세장에서는 주식 비중을 줄이고 경기방어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강세장에서는 주식 비중을 최대 100%까지 늘린다.

안성재 삼성증권 랩지원팀장은 “기존 자문형 랩은 고객들이 한 자문사 상품에 가입해 수익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운용 스타일이 다른 자문형 랩 간에 자유로운 이동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아임유(I’M YOU)’라는 랩어카운트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안정적이고 꾸준하게 시중금리+알파(추가수익)를 내는 것을 목표로 공격형 적극형 중립형 안정형 등 네 가지 등급의 상품으로 구성돼 있다. 위험등급에 따라 주식 비중을 조절하고 고객의 성향에 맞춰 주식 채권 주가연계증권(ELS) 주가연계펀드(ELF) ETF 현금 등으로 자산을 배분한다.

우리투자증권의 ‘WOW(wrap of wrap) 시스템’도 하나의 계좌에서 다양한 투자전략으로 주식 펀드 채권 등을 담도록 설계됐다. 미래에셋증권은 1 대 1 맞춤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인 ‘맵스 프리미어 랩어카운트’를 제공하고 있으며, 2월 말 기존 서비스에 자산별 차등 수수료를 적용하고 기간별 보수율 등을 새롭게 적용한 ‘프리미어S+’를 내놓을 계획이다. 하나대투증권도 이와 유사한 통합자산관리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소비자 외면이 변화의 이유

수익률보다 위험관리…'랩'이 달라졌다
증권사들이 새로운 랩어카운트 서비스에 주력하는 까닭은 기존 자문형 랩 고객의 이탈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작년 7월 말 8조9647억원에 달했던 자문형 랩 잔고는 12월 말 6조321억원까지 줄었다. 지난해 8월 이후 자문형 랩 성과가 시장을 밑돌면서다.

증권사 PB센터 등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2000을 회복한 현재까지도 지난해 4~7월에 가입한 자문형 랩 고객들은 10~15%대 손실을 겪고 있다. 주가가 더 올라 자문형 랩이 원금 회복에 가까워지면 조 단위의 환매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기존 자문형 고객들은 조금씩이나마 새 자문형 랩 서비스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 1월 초 케이원투자자문의 ‘장기 K’를 중심으로 신규자금 1700억원이 유입됐고, 2월에도 브레인투자자문으로 1100억원이 들어오는 등 최근 랩에 활발한 자금 유입이 이뤄지고 있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고객들이 자문형 랩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최근 들어서는 자문형 랩 종목이 시장 대비 초과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보다 나은 성과를 내고 위험관리를 잘하는 랩 상품으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