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ㆍ공포만 경험한 日 20대…"유학도 해외근무도 모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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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의 도쿄 리포트 (3·끝) 미래를 체념한 코쿤족
현상유지 증후군
"번 만큼 쓰고 편히 살자" 비정규직 70% '지금 이대로'
美 유학생, 사우디보다 적어
非婚·晩婚 확산
30대 男 둘 중 한 명은 미혼…평생 결혼 안하는 남자 16%
지방선 국적 불문 맞선 주선
현상유지 증후군
"번 만큼 쓰고 편히 살자" 비정규직 70% '지금 이대로'
美 유학생, 사우디보다 적어
非婚·晩婚 확산
30대 男 둘 중 한 명은 미혼…평생 결혼 안하는 남자 16%
지방선 국적 불문 맞선 주선
2009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흥미로운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일본항공(JAL)의 20년 사이 달라진 입사식 모습이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화려했던 신입사원들의 복장이 2009년엔 스튜어디스조차 모두 어두운 단색으로 바뀐 것이다.
이 일화를 들려준 모리 지하루 요미우리신문 논설위원은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며 젊은 세대의 개성이 사라진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지금 20대가 겪고 경험한 것이라고는 1990년대 거품 붕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9·11 테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작년 대지진 등 혼란과 공포뿐이다. 젊은 세대가 누에고치(코쿤) 속에 안주하는 ‘코쿤족’이 돼가는 이유다.
◆미 대학 유학생, 한국의 3분의1
일본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보는 시각은 한마디로 실망과 우려 일색이다. 구보타 마사카즈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전무는 그런 심정을 잘 요약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해외로 나가는 게 즐거웠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일본 안에서 만족하고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없다. 심지어 게이단렌 직원들조차 해외 근무를 권하면 인터넷으로 다 알 수 있다며 꺼린다.”
이런 기류는 유학 기피에서 두드러진다. 보통 대학 3학년 말~4학년 초에 취업에 나서는데, 비싼 돈 들여 고생하며 유학해봐야 취업 기회만 놓친다는 것이다.
미국 국제교육연구소(IIE)의 작년 통계를 보면 일본의 미국 대학 유학생 수는 2만1290명으로 전년보다 14.3% 줄어 세계 7위에 그쳤다.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적다. 한국이 1.7% 늘어난 7만3351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3위인 것과 대조적이다. 다케모리 ?페이 게이오대 교수는 “명문인 게이오대 경제학부조차 하버드 프린스턴에는 유학생이 전혀 없고 컬럼비아대에 한 명뿐”이라고 개탄했다.
일본의 청년(15~24세) 취업자 중 비정규직이 45.9%, 실업자는 9.4%에 달한다. 그렇다고 정규직을 갈망하는 것도 아니다. 구보타 전무는 “비정규직의 70%가 지금 일을 그대로 하길 원한다”고 전했다. 성공, 부(富)를 바라는 대신 그냥 번 만큼 쓰며 편하게 살자는 ‘현상유지 증후군’인 셈이다.
◆연애도 결혼도 기피
일본 젊은 세대의 위축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혼자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와 온순하고 순응적인 ‘초식남’이 대세가 돼버렸다. 심지어 섹스에도 별 관심이 없다고 한다. 게이단렌에 파견나온 김봉만 전경련 과장은 “직장인들이 ‘나홀로 점심’이 보통이고 연애나 결혼도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가뜩이나 인구가 줄어 걱정인데 남성 미혼율이 30~34세 48%, 35~39세 31%에 달한다. 여성보다 15%포인트가량 높다. 다케이시 에미코 호세이대 교수는 “경제 불안 탓인지 평생 결혼을 안 하는 남성 비율이 15.96%로 여성(7.25%)의 두 배가 넘는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도 한국보다 10여년 앞서 불거졌다. 이른바 ‘1·57 쇼크’ 이후 20여년간 온갖 수단을 동원했어도 합계출산율은 1.4명을 넘지 못한다. ‘1·57 쇼크’란 1989년 출산율이 1.57명으로 추락, 백말띠 해여서 출산을 기피했던 1966년(1.58명)보다 낮아진 현상을 가리킨다. 다케이시 교수는 “사정이 더 심각한 지방자치단체들은 국적 불문하고 미혼남녀에게 선보는 자리를 마련해줄 정도”라고 귀띔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걱정”
젊은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은둔 현상은 미래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최근 일본에선 ‘중국화되는 일본’이란 책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이런 ‘히키코모리’의 뿌리가 봉건 에도시대에 있다는 요지다. 에도시대엔 300여개의 좁은 소국으로 분화돼 넓게 펼치지 못하고 축소 지향적이 됐다는 것이다. 나카지마 데쓰오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은 “그동안 혈통 중심으로 사람을 뽑아왔지만 이제는 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웃 일본의 추락은 한국에도 치명적인 쓰나미다. 유럽 위기보다 충격이 훨씬 큰 리스크다. 인구 구조에 비춰볼 때 지금 일본은 10년 뒤 한국의 자화상이나 마찬가지다. 대지진 이후 갈수록 위축돼가는 일본에 좋든 싫든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을 외쳐줘야 하는 상황이 돼가고 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이 일화를 들려준 모리 지하루 요미우리신문 논설위원은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며 젊은 세대의 개성이 사라진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지금 20대가 겪고 경험한 것이라고는 1990년대 거품 붕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9·11 테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작년 대지진 등 혼란과 공포뿐이다. 젊은 세대가 누에고치(코쿤) 속에 안주하는 ‘코쿤족’이 돼가는 이유다.
◆미 대학 유학생, 한국의 3분의1
일본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보는 시각은 한마디로 실망과 우려 일색이다. 구보타 마사카즈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전무는 그런 심정을 잘 요약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해외로 나가는 게 즐거웠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일본 안에서 만족하고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없다. 심지어 게이단렌 직원들조차 해외 근무를 권하면 인터넷으로 다 알 수 있다며 꺼린다.”
이런 기류는 유학 기피에서 두드러진다. 보통 대학 3학년 말~4학년 초에 취업에 나서는데, 비싼 돈 들여 고생하며 유학해봐야 취업 기회만 놓친다는 것이다.
미국 국제교육연구소(IIE)의 작년 통계를 보면 일본의 미국 대학 유학생 수는 2만1290명으로 전년보다 14.3% 줄어 세계 7위에 그쳤다.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적다. 한국이 1.7% 늘어난 7만3351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3위인 것과 대조적이다. 다케모리 ?페이 게이오대 교수는 “명문인 게이오대 경제학부조차 하버드 프린스턴에는 유학생이 전혀 없고 컬럼비아대에 한 명뿐”이라고 개탄했다.
일본의 청년(15~24세) 취업자 중 비정규직이 45.9%, 실업자는 9.4%에 달한다. 그렇다고 정규직을 갈망하는 것도 아니다. 구보타 전무는 “비정규직의 70%가 지금 일을 그대로 하길 원한다”고 전했다. 성공, 부(富)를 바라는 대신 그냥 번 만큼 쓰며 편하게 살자는 ‘현상유지 증후군’인 셈이다.
◆연애도 결혼도 기피
일본 젊은 세대의 위축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혼자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와 온순하고 순응적인 ‘초식남’이 대세가 돼버렸다. 심지어 섹스에도 별 관심이 없다고 한다. 게이단렌에 파견나온 김봉만 전경련 과장은 “직장인들이 ‘나홀로 점심’이 보통이고 연애나 결혼도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가뜩이나 인구가 줄어 걱정인데 남성 미혼율이 30~34세 48%, 35~39세 31%에 달한다. 여성보다 15%포인트가량 높다. 다케이시 에미코 호세이대 교수는 “경제 불안 탓인지 평생 결혼을 안 하는 남성 비율이 15.96%로 여성(7.25%)의 두 배가 넘는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도 한국보다 10여년 앞서 불거졌다. 이른바 ‘1·57 쇼크’ 이후 20여년간 온갖 수단을 동원했어도 합계출산율은 1.4명을 넘지 못한다. ‘1·57 쇼크’란 1989년 출산율이 1.57명으로 추락, 백말띠 해여서 출산을 기피했던 1966년(1.58명)보다 낮아진 현상을 가리킨다. 다케이시 교수는 “사정이 더 심각한 지방자치단체들은 국적 불문하고 미혼남녀에게 선보는 자리를 마련해줄 정도”라고 귀띔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걱정”
젊은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은둔 현상은 미래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최근 일본에선 ‘중국화되는 일본’이란 책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이런 ‘히키코모리’의 뿌리가 봉건 에도시대에 있다는 요지다. 에도시대엔 300여개의 좁은 소국으로 분화돼 넓게 펼치지 못하고 축소 지향적이 됐다는 것이다. 나카지마 데쓰오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은 “그동안 혈통 중심으로 사람을 뽑아왔지만 이제는 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웃 일본의 추락은 한국에도 치명적인 쓰나미다. 유럽 위기보다 충격이 훨씬 큰 리스크다. 인구 구조에 비춰볼 때 지금 일본은 10년 뒤 한국의 자화상이나 마찬가지다. 대지진 이후 갈수록 위축돼가는 일본에 좋든 싫든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을 외쳐줘야 하는 상황이 돼가고 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