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 거리 게이샤 웃음에서 교토의 '천년향기'를 맡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전통·현대의 공존 '모던 교토'
게이샤 되려는 '마이코'전통…천년고도의 매력적 아이콘
기모노 입고 기요미즈데라 본당 서니 교토시내가 한눈에 …
1200년된 염색기술은 명품 에르메스도 탐낼 정도
게이샤 되려는 '마이코'전통…천년고도의 매력적 아이콘
기모노 입고 기요미즈데라 본당 서니 교토시내가 한눈에 …
1200년된 염색기술은 명품 에르메스도 탐낼 정도
홍등이 내걸린 교토 기온거리의 한 골목. 분단장을 곱게 한 그녀와 마주쳤다. 가슴은 뛰었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빨간 입술, 꽃 장식을 한 머리와 분칠을 한 얼굴은 분명 인형이었다. 보고 싶었던 그녀를 하나미코지(花見小路)에서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던 교토를 만나러 간다.
◆교토의 어린 기생 마이코
천년고도 교토의 가장 매력적인 아이콘은 마이코(舞妓)다. 교토에서는 게이코라고 부르는 게이샤(藝者)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15~19세의 무희인 마이코는 교토의 살아있는 전통이다. 게이코는 기예인이란 뜻으로, 웃음을 파는 접대부가 아니라 가무와 화술을 두루 갖춘 예능인이다.
게이샤가 나오는 고급요정 오차야(お茶屋)가 도쿄·오사카에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지만 교토에서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교토의 신뢰상거래 시스템 덕분이다. 교토 오차야는 게이코와 요리사를 아웃소싱하고 서비스의 모든 것을 최고로 만든다. 철저한 분업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오차야에선 고객만족을 위해 엄격한 교육으로 가무를 연마한 마이코가 되어야만 한다. 마이코들은 손님과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택시로 이동한다. 천년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 감각으로 무장한 모던 교토의 단면이다.
일본 전통 복장인 기모노를 빌려주는 교고코로(京ごころ)에서 여행자들은 마이코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남자들은 기모노를 입고, 여자들은 머리를 올려 마이코처럼 변신한다. 오랜 세월의 향기를 담은 교토의 공기가 상쾌하다. 조리 신발에 끼인 발가락이 아프지만 즐거운 경험이다.
◆과욕 경계하는 오토와폭포
기모노를 입은 채 교토 여행의 출발점인 기요미즈데라(淸水寺)로 간다. 절 입구까지는 일본 전통가옥과 전통공예품을 파는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한 차완자카 언덕길이다. 기념품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마이코를 체험 중인 관광객들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느라 바쁘다.
절 입구의 인왕문을 지나면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15m 절벽 위에 139개의 커다란 나무기둥으로 세운 기요미즈데라 본당 무대가 보인다. 일본인들은 큰 결심을 할 때 “기요미즈데라 무대에서 뛰어내릴 각오다”라고 한다. 본당 앞에 서니 교토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본당 아래에는 오토와폭포가 있다. 오토와산에서 내려온 물로 3개의 수로를 만들어 건강, 지혜, 사랑을 의미하는 폭포다. 그 중 두개 수로의 물만 마셔야지 과욕을 부려 세개 수로의 물을 다 마시면 바보가 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절 입구로 내려오는 길에는 산넨자카(三年坂), 니넨자카(二年坂)의 돌길이 예쁘게 보존돼 있다.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 니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밖에 못 산다는 말이 있으니 혹시나 넘어지면 수십 번씩을 구르면 된다.
◆1200년 전통의 염색공방
이번에는 장인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노포(오래된 가게)를 만나러 간다. 빛의 방향과 강약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옷감을 만드는 유메유사이 염색공방의 옷감은 일본 최고의 기모노 소재다. 일왕의 옷에만 허락됐던 염색기법은 1200년 전통을 자랑한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도 탐내는 염색기법이라니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염색 장인인 오쿠다 유사이 씨는 “물의 소중함을 알고 태양을 붉은색으로 여기는 한국인과 일본인만 할 수 있는 염색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장인의 능력이 3이라면 자연의 능력이 7”이라며 교토의 물을 자랑한다.
가이카도(開化堂)는 130년 넘게 찻통을 만들어온 가게다. 1875년 처음 디자인한 차통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데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에도 잘 어울릴 만큼 심플하다. 공기를 차단하는 기능 또한 훌륭해 차 애호가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6명의 직원이 만드는 차통은 하루 10개. 지금 주문하면 4개월 이후에 받을 수 있단다. 차뿐만 아니라 스파게티나 커피원두를 보관하는 용기로 유럽에 수출도 하고 있다.
배의 돛을 만드는 범포(帆布)로 가방을 제작하는 이치자와신자부로(一澤信三)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가방 가게다. 가방을 만져보니 튼튼하면서도 세련되고 부드럽다. 손님의 주문대로 가방 디자인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20년 이상 사용해 손잡이가 너덜너덜한 가방 수리주문표 주소란에는 홋카이도라고 적혀 있다. 재봉틀 앞에서 일하던 직원이 한국 관광객을 보자 ‘안녕하세요’ ‘한국 사랑해요’라며 한류 팬임을 자처한다.
◆이국에서 만나는 정지용과 윤동주
교토 중심을 가로지르는 강 가모가와에는 벚나무가 꽃망울을 머금고 봄을 기다리고 있다. 식민지 출신 유학생 시인 정지용은 이곳에서 ‘가모가와 십릿벌에 해는 저물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이라고 노래했다.
19년 뒤 같은 도시샤(同志社)대 영문과에 입학한 후배 윤동주도 대선배의 시를 음미하며 이 강변을 걸었으리라. 가모가와의 겨울 강바람은 잃어버린 학창 시절 시심을 자극한다. 두 시인의 시비가 대학 교정에 서 있다. 겨울에 찾은 교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시적 분위기를 더한다.
일상에 지쳤을 때 호젓한 곳을 찾아 훌쩍 가고 싶은 곳, 철학의 길을 따라 걷고 싶을 때 사색의 교토를 다시 찾고 싶다.
교토=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 여행팁
대한항공이 김포~간사이공항을 하루 4회, 인천~간사이공항을 3회 운항한다. 교토시교토관광가이드(kyoto.travel/kr)에 유용한 정보가 많다. ‘교토 윈터 스페셜’의 하나인 ‘마이코 이벤트 인(in) 기온’이 3월4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오후 6시와 7시 야사카이칸(회관) 기온코너에서 열린다. 화려한 기모노를 걸친 마이코들의 교마이(京舞·일본무용)를 감상할 수 있다. 꽃꽂이와 다도, 전통음악, 교토 특유의 희극인 교겐(狂言) 도 볼 만하다.
◆교토의 어린 기생 마이코
천년고도 교토의 가장 매력적인 아이콘은 마이코(舞妓)다. 교토에서는 게이코라고 부르는 게이샤(藝者)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15~19세의 무희인 마이코는 교토의 살아있는 전통이다. 게이코는 기예인이란 뜻으로, 웃음을 파는 접대부가 아니라 가무와 화술을 두루 갖춘 예능인이다.
게이샤가 나오는 고급요정 오차야(お茶屋)가 도쿄·오사카에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지만 교토에서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교토의 신뢰상거래 시스템 덕분이다. 교토 오차야는 게이코와 요리사를 아웃소싱하고 서비스의 모든 것을 최고로 만든다. 철저한 분업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오차야에선 고객만족을 위해 엄격한 교육으로 가무를 연마한 마이코가 되어야만 한다. 마이코들은 손님과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택시로 이동한다. 천년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 감각으로 무장한 모던 교토의 단면이다.
일본 전통 복장인 기모노를 빌려주는 교고코로(京ごころ)에서 여행자들은 마이코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남자들은 기모노를 입고, 여자들은 머리를 올려 마이코처럼 변신한다. 오랜 세월의 향기를 담은 교토의 공기가 상쾌하다. 조리 신발에 끼인 발가락이 아프지만 즐거운 경험이다.
◆과욕 경계하는 오토와폭포
기모노를 입은 채 교토 여행의 출발점인 기요미즈데라(淸水寺)로 간다. 절 입구까지는 일본 전통가옥과 전통공예품을 파는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한 차완자카 언덕길이다. 기념품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마이코를 체험 중인 관광객들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느라 바쁘다.
절 입구의 인왕문을 지나면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15m 절벽 위에 139개의 커다란 나무기둥으로 세운 기요미즈데라 본당 무대가 보인다. 일본인들은 큰 결심을 할 때 “기요미즈데라 무대에서 뛰어내릴 각오다”라고 한다. 본당 앞에 서니 교토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본당 아래에는 오토와폭포가 있다. 오토와산에서 내려온 물로 3개의 수로를 만들어 건강, 지혜, 사랑을 의미하는 폭포다. 그 중 두개 수로의 물만 마셔야지 과욕을 부려 세개 수로의 물을 다 마시면 바보가 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절 입구로 내려오는 길에는 산넨자카(三年坂), 니넨자카(二年坂)의 돌길이 예쁘게 보존돼 있다.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 니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밖에 못 산다는 말이 있으니 혹시나 넘어지면 수십 번씩을 구르면 된다.
◆1200년 전통의 염색공방
이번에는 장인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노포(오래된 가게)를 만나러 간다. 빛의 방향과 강약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옷감을 만드는 유메유사이 염색공방의 옷감은 일본 최고의 기모노 소재다. 일왕의 옷에만 허락됐던 염색기법은 1200년 전통을 자랑한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도 탐내는 염색기법이라니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염색 장인인 오쿠다 유사이 씨는 “물의 소중함을 알고 태양을 붉은색으로 여기는 한국인과 일본인만 할 수 있는 염색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장인의 능력이 3이라면 자연의 능력이 7”이라며 교토의 물을 자랑한다.
가이카도(開化堂)는 130년 넘게 찻통을 만들어온 가게다. 1875년 처음 디자인한 차통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데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에도 잘 어울릴 만큼 심플하다. 공기를 차단하는 기능 또한 훌륭해 차 애호가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6명의 직원이 만드는 차통은 하루 10개. 지금 주문하면 4개월 이후에 받을 수 있단다. 차뿐만 아니라 스파게티나 커피원두를 보관하는 용기로 유럽에 수출도 하고 있다.
배의 돛을 만드는 범포(帆布)로 가방을 제작하는 이치자와신자부로(一澤信三)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가방 가게다. 가방을 만져보니 튼튼하면서도 세련되고 부드럽다. 손님의 주문대로 가방 디자인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20년 이상 사용해 손잡이가 너덜너덜한 가방 수리주문표 주소란에는 홋카이도라고 적혀 있다. 재봉틀 앞에서 일하던 직원이 한국 관광객을 보자 ‘안녕하세요’ ‘한국 사랑해요’라며 한류 팬임을 자처한다.
◆이국에서 만나는 정지용과 윤동주
교토 중심을 가로지르는 강 가모가와에는 벚나무가 꽃망울을 머금고 봄을 기다리고 있다. 식민지 출신 유학생 시인 정지용은 이곳에서 ‘가모가와 십릿벌에 해는 저물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이라고 노래했다.
19년 뒤 같은 도시샤(同志社)대 영문과에 입학한 후배 윤동주도 대선배의 시를 음미하며 이 강변을 걸었으리라. 가모가와의 겨울 강바람은 잃어버린 학창 시절 시심을 자극한다. 두 시인의 시비가 대학 교정에 서 있다. 겨울에 찾은 교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시적 분위기를 더한다.
일상에 지쳤을 때 호젓한 곳을 찾아 훌쩍 가고 싶은 곳, 철학의 길을 따라 걷고 싶을 때 사색의 교토를 다시 찾고 싶다.
교토=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 여행팁
대한항공이 김포~간사이공항을 하루 4회, 인천~간사이공항을 3회 운항한다. 교토시교토관광가이드(kyoto.travel/kr)에 유용한 정보가 많다. ‘교토 윈터 스페셜’의 하나인 ‘마이코 이벤트 인(in) 기온’이 3월4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오후 6시와 7시 야사카이칸(회관) 기온코너에서 열린다. 화려한 기모노를 걸친 마이코들의 교마이(京舞·일본무용)를 감상할 수 있다. 꽃꽂이와 다도, 전통음악, 교토 특유의 희극인 교겐(狂言) 도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