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집단적 질시에 빠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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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독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수 대기업 직원이라고 했다. “대기업이 지금처럼 중소기업 피 빨아먹고 골목 상권까지 다 죽이면서 돈버는 건 잘못이잖아요. 서로 상생하자고 다들 그러는데 한국경제신문은 왜 이런 주장에 부정적입니까?” -네 선생님 말씀대로 대기업이 중소 협력업체에 나눠주면 좋죠. 그럼 선생님 월급 30%쯤 떼서 납품 중소기업 직원 월급을 올려주는 방안은 어떤가요? “아니 갑자기 내 월급 얘기는 왜 합니까. 서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대기업 횡포를 막자는 것인데….” -선생님 회사야말로 월급 많이 주는 대표적인 대기업이잖아요. 상생하자면서 정작 본인 월급은 나눠주지 못하겠다면 말이 됩니까? 상생은 좋은데요 모두가 자기는 빠지고 남에게만 이를 요구하는 건 문제 아닐까요? 몇 분의 대화가 더 오고간 후 독자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사과의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서민의 탈을 쓰고 남탓만해
대한민국이 집단적인 질시에 빠졌다. 모두가 서민이라는 탈을 쓰고 나보다 부자, 나말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만 손가락질을 해대는 형국이다. 이들은 부자들을 혼내주고 그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좀 더 큰 집이나 좀 더 좋은 차를 타지 못하는 것도 부자들 때문이라고 여긴다. 사회 전체가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들고 있다는 얘기다. 각종 횡령과 비리사건이 끊이지 않고 거의 모든 프로스포츠에 승부조작이 만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봐야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입만 열면 대기업과 부자를 욕하고 우리사회 양극화를 과장한다. 점점 살기가 어려워져 서민과 중소기업은 다 죽어간다고 선동한다. 언론의 책임도 있다. 명확한 개념 정의나 통계수치 없이 막연히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느니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끝났다’느니 하며 부추겨왔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단 한 차례도 전년보다 줄어든 적이 없다. 실질소득을 기준으로 해도 글로벌위기 영향을 받은 2009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2% 안팎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 도시근로자 4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33만5000원이다.
소득양극화 오히려 개선돼
연간으로는 5200만원에 해당한다. 연봉정보사이트 페이오픈의 조사 결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 연봉으로 꼽은 5000만~7000만원 구간에 속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 정도의 소득을 평균적인 가구가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양극화가 심화됐다지만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오히려 개선됐다. 1인 이상 가구의 경우 2007년 0.312에서 2010년 0.310으로, 2인 이상 가구는 같은 기간 0.295에서 0.288로 낮아졌다.
그런데 사람들의 주관적 느낌은 이와는 딴판이다. 2011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꼽은 사람은 52.8%에 불과하고 무려 45.3%가 자신을 하층이라고 평가했다. 소득수준에 만족하는 사람은 11.8%에 그쳤지만 불만인 사람은 거의 절반인 49.1%에 달한다. 실질 소득이 늘어도 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확산되면 갈등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정책결정은 왜곡되고 진짜 취약계층은 오히려 소외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서민의 탈을 쓰고 남탓만해
대한민국이 집단적인 질시에 빠졌다. 모두가 서민이라는 탈을 쓰고 나보다 부자, 나말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만 손가락질을 해대는 형국이다. 이들은 부자들을 혼내주고 그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좀 더 큰 집이나 좀 더 좋은 차를 타지 못하는 것도 부자들 때문이라고 여긴다. 사회 전체가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들고 있다는 얘기다. 각종 횡령과 비리사건이 끊이지 않고 거의 모든 프로스포츠에 승부조작이 만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봐야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입만 열면 대기업과 부자를 욕하고 우리사회 양극화를 과장한다. 점점 살기가 어려워져 서민과 중소기업은 다 죽어간다고 선동한다. 언론의 책임도 있다. 명확한 개념 정의나 통계수치 없이 막연히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느니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끝났다’느니 하며 부추겨왔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단 한 차례도 전년보다 줄어든 적이 없다. 실질소득을 기준으로 해도 글로벌위기 영향을 받은 2009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2% 안팎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 도시근로자 4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33만5000원이다.
소득양극화 오히려 개선돼
연간으로는 5200만원에 해당한다. 연봉정보사이트 페이오픈의 조사 결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 연봉으로 꼽은 5000만~7000만원 구간에 속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 정도의 소득을 평균적인 가구가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양극화가 심화됐다지만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오히려 개선됐다. 1인 이상 가구의 경우 2007년 0.312에서 2010년 0.310으로, 2인 이상 가구는 같은 기간 0.295에서 0.288로 낮아졌다.
그런데 사람들의 주관적 느낌은 이와는 딴판이다. 2011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꼽은 사람은 52.8%에 불과하고 무려 45.3%가 자신을 하층이라고 평가했다. 소득수준에 만족하는 사람은 11.8%에 그쳤지만 불만인 사람은 거의 절반인 49.1%에 달한다. 실질 소득이 늘어도 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확산되면 갈등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정책결정은 왜곡되고 진짜 취약계층은 오히려 소외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