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클린턴이 가르쳐주는 '복지'
미국 주가(다우존스지수)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나스닥지수는 11년여 만의 최고치로 올라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진앙지였던 나라의 뒷심이 예사롭지 않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 GM과 포드 등 간판 제조업체들의 부활이 눈에 띈다. 닷컴 1세대 기업이었던 아마존도 ‘킨들파이어’ 돌풍과 함께 변신에 성공했다. 애플, 구글 등 ‘실리콘 밸리 군단’ 선두주자들의 기세도 갈수록 등등하다. 월가 금융자본의 실패 속에 가려져 있던 실물 기업부문이 저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저력의 근원이 궁금해진다. 1980년대 미국을 이끈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부시 두 공화당 대통령의 ‘12년 치세(治世)’가 밑거름을 깔았음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두 대통령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광풍에 맞서 ‘큰 시장, 작은 정부’ 정책을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과감한 세율 인하와 규제완화로 기업의 창의와 투자를 북돋웠다.

“기업이 만드는 일자리가 복지다”

하지만 미국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던 소니 도요타 등 일본 회사들의 위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권토중래를 위한 다운사이징(대규모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계속됐다. 실직자가 줄을 이었고, 경제 양극화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5%로 안정돼 있던 실업률이 1990년대 초반 8% 가까이로 치솟았다.

민주당의 클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란 말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 구호와 함께 집권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였다. ‘800만개 일자리(EMJ·Eight Million Job) 창출’이 그의 공약 1호였다. 양극화의 상처를 입은 저소득층 유권자들을 겨냥해 소득격차 축소를 약속했지만, 그 방법을 기업 일자리 확대에서 찾았다. 전임 대통령들의 핵심 아젠다였던 공공부문 축소와 규제완화를 그대로 이어받은 이유다. ‘클린턴 리퍼블리컨(클린턴을 지지하는 공화당 지지자)’을 대거 탄생시킨 ‘정치 묘수’였다.

그때의 미국, 요즘의 한국

당선되자마자 기업인과의 스킨십을 늘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GE의 잭 웰치, IBM의 루이스 거스너, 씨티그룹의 샌포드 웨일 등 기업 총수들을 틈날 때마다 불러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뉴욕타임스가 명명(命名)한 ‘FOB(Friends of Bill’s·빌의 친구들)’는 그렇게 탄생했다. 앨 고어 부통령을 단장으로 한 ‘정보 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추진단’을 출범시킨 건 그 결실이었다. 기초 및 응용과학 분야에서 수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것은 물론, 인터넷망 등 IT 인프라를 확충해 실리콘 밸리 벤처 기업들의 탄생에 불을 지폈다.

요즘 한국도 ‘복지’와 ‘일자리’가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양대 선거를 앞둔 정당 지도자들이 청년 실업자 생계비 지원, 무상급식 확대 등의 달콤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엊그제 만난 심상정 통합진보당 대표가 “새누리당조차 우리의 ‘지식재산’인 복지 아젠다를 베끼기에 급급한 모습이 안쓰럽다”고 혀를 끌끌 차는 지경이다.

클린턴은 저소득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턱없이 낮춰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란(大亂)을 잉태시켰다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능력이 있는데도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복지도 없다”며 ‘워크페어(workfare·일과 복지의 합성어)’의 새 지평을 연 것 또한 그의 업적이다. 미국의 저력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게 아니다.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