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목재산업은 1960~70년대 우리 경제의 고도 성장기를 이끌어온 기간산업의 하나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산업 지형이 바뀌고 원목 수입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목재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1차 가공 위주의 사업구조여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당시 승승장구하던 동명목재 등 상당수 목재회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했다.

동화기업은 위기의 순간마다 절묘한 승부수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신규 사업 아이템과 기술을 과감히 도입, 국내 목재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준 오일쇼크

동화기업은 1948년 서울 왕십리의 작은 제재소로 출발했다. 인천 가좌동에 목재공업단지가 조성된 1975년 파티클보드(PB) 공장을 세웠다. 제재소 수준을 넘어 명실상부한 목재회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 목재업체 대다수는 해외에서 수입한 원목을 제재해 합판으로 만드는 1차 가공 방식에 주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1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동화기업은 수입 원목에 의존하는 단순 가공 사업으로는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 해답이 PB사업이었다. 동화기업의 승부수는 금세 성과를 냈다. 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원목 가격이 치솟은 데다 건설 호경기라는 순풍도 불었다. 원목 합판에 비해 저렴한 PB에 대한 주문이 쇄도했다. 1986년에는 국내 최초의 중밀도 섬유판(MDF) 공장을 준공했다. 연이어 화학 수지 사업으로 사세를 확장해나갔다. 2000년에는 국내 최대 목재 회사인 대성목재를 인수, 명실상부한 업계 1위 자리를 굳혔다.

회사 관계자는 “재활용 목재 자원을 화학 수지와 결합하는 파티클보드 사업을 국내 최초로 시작해 노동 집약적인 목재산업을 기술 집약적인 산업으로 탈바꿈시켰다”며 “국내 최초로 MDF 공장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설비와 기술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강화마루 시장 ‘선구자’

강화마루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게 된 주인공도 동화기업이었다. 1996년 국내 최초로 강화마루 공장을 세운 곳도 이 회사였다. MDF 사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유럽에서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강화마루 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었고, ‘동화자연마루’는 강화마루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강화마루는 원목을 주로 사용하는 기존 마루판과 달리 MDF에 비해 내구성과 강도를 높인 고밀도 섬유판(HDF)이 핵심 소재다.

2003년 지주회사 동화홀딩스 출범으로 동화기업은 그룹 내 소재사업군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동화홀딩스는 동화기업 외에 국내 1위의 강화마루 회사인 동화자연마루와 단독주택 전문 기업인 동화SFC하우징, 중고차 매매를 포함한 자동차 애프터 마켓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동화오토앤비즈에 이르기까지 3개 사업군 5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매출 1조원 규모의 중견기업이다.

하지만 국내 목재 산업의 현주소는 그리 녹록지 않다는 평가다. 동화기업의 주력 사업인 보드 시장이 수년째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건설경기의 회복세 둔화 탓에 가구업체와 건설사들의 보드 수요가 줄어들고 있지만 보드 제조에 필요한 화학물의 원자재 가격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수요는 줄고 생산원가는 오르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 가구 및 건설 원자재인 PB, MDF 등의 수요가 위축되는 추세다.

○글로벌 공급과잉 돌파가 과제

PB 시장은 동화기업 성창보드 등 국내 2개사가 연간 90만㎥ 안팎을 생산, 시장의 55%를 점유하고 있다. 나머지 45%는 동남아 유럽 등 수입산이다. 국내 PB 시장 규모는 2007년까지 연간 160만㎥ 수준을 유지했지만 건설경기 위축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최근에는 연간 140만㎥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MDF는 동화기업, 유니드, 선창산업, 한솔홈데코, 광원목재 등 7개 국내 업체들이 연간 160만㎥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고급 자재시장 선점 경쟁이 불붙으면서 2000년대 들어 국내 업체들 간 증설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MDF 시장은 국내 업체들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지만, 건설경기 부진 탓에 수요는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보드시장의 공급과잉 현상도 변수다. 글로벌 경기불황 여파로 동남아 유럽 등 주요 보드업체들이 재고 해소를 위해 한국 등의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산 PB 제품에 대해서는 반덤핑 관세가 부과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유럽 북미 등의 PB 수입이 늘어나고 있다. 정하현 한국합판보드협회 이사는 “보드 산업은 가격에서 차지하는 원재료비의 비중이 높아 국내외 경기변동과 같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올해 국내 PB 수요는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럽의 재정위기 여파로 인해 유로화 가치가 꾸준히 하락, 유럽산 PB 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MDF도 마찬가지다. 이 이사는 “국내 가구시장의 침체로 MDF 수요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업체들 간 증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