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미국 최대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했다. 미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미국 자동차업계를 더 실망시킨 사건이 이어졌다. 이듬해 9월 자동차업계 경험이 전혀 없는 댄 애커슨이란 사람이 GM의 최고경영자로 임명된 것. GM 본사가 있는 미시건주의 한 신문은 “애커슨이란 작자가 대체 누구냐(Who is this Akerson guy)?”라는 제목의 기사로 애커슨을 공격했다. 애커슨이 2000년 담낭수술을 받으러 독일에 갔다가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스스로 팔에 연결된 호스를 빼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사실까지 들먹이며 자질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2년6개월 뒤. GM은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GM의 회생은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상징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화려한 부활을 주도한 사람은 자동차에 대해 전혀 모르던 애커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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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문외한, GM을 살리다

미국 재무부는 2009년 7월 애커슨을 GM 이사진에 파견했다. 애커슨은 세계 최대 사모펀드 칼라일에서 글로벌 인수·합병(M&A) 책임자를 지냈다. 그의 M&A 경험이 GM 재생에 도움이 될 것이란 게 재무부의 판단이었다.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만든 뒤 비싼 값에 재매각해 이익을 챙긴다. GM의 생존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게 재무부의 판단이었다.

애커슨은 이사회 멤버로 회사 사정을 파악한 뒤 2010년 9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비(非)전문가 애커슨에 대한 우려는 가라앉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의 한 애널리스트는 “애커슨은 자동차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 해결책을 얻어도 그게 정답인지도 모를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애커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초보자는 전문가들이 당연히 여기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고, 그들이 고민하지 않았던 근본적 문제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경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회사 CEO가 자동차의 세세한 부분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 얘기였다.

그는 일반 소비자들의 관점에서 해법을 찾았다. 유가 상승과 실질임금 하락으로 고통을 겪는 운전자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인 GM의 대형 차량보다 연비효율이 높은 중·소형차 라인업을 강화한 것도 그가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평가다.

애커슨은 또 GM을 두 개의 회사로 분리해 회생시킨다는 재무부의 방침을 효율적으로 집행했다. 부실자산은 ‘배드컴퍼니(bad company)’로 몰아 청산하고, 브랜드와 건전한 자산은 ‘뉴 컴퍼니’로 이관해 회사를 분리했다. 그리고 뉴컴퍼니가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받아 새 출발을 하는 구조였다. 회사를 분리하는 것은 사모펀드 M&A에서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이었다. GM의 자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리해 회생시키는데 그의 사모펀드 경험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이 미국 언론의 평가다. 2010년 11월 ‘뉴 GM’은 애커슨의 지휘 아래 재상장에 성공했다.

◆루 거스너로부터 IBM의 경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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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커슨은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성공사례에서 답을 찾는 노력도 했다. 그는 CEO에 임명된 뒤 IBM의 전설적 경영자인 루 거스너를 찾았다. 거스너는 식품회사 나비스코 출신으로 1993년 빈사상태에 빠져 있던 ‘공룡’ IBM 사장을 맡아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반전을 일궈냈다. 애커슨을 만난 거스너는 “경쟁력 있고 풍부한 경험을 갖춘 낙관론자를 중용하라”고 조언했다. 애커슨은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에서 현대자동차 돌풍을 일으킨 주역 조엘 이와닉을 영입, 글로벌 마케팅 책임자로 임명했다. 인사 담당이던 메리 바라를 상품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기용하는 파격 인사도 했다. GM 직원들이 뭔가 변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는 비용절감책도 찾았다. 플랫폼(차 뼈대) 표준화였다. 자동차 모델 하나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수천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하나의 뼈대로 겉모습이 다양한 차종을 만들면 개발비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폭스바겐, 현대차 등이 이를 통해 비용경쟁력을 확보한 것을 애커슨은 잘 알고 있었다. 이 같은 노력은 판매 증가로 이어지며 GM은 곧 흑자로 돌아섰다.

GM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903만대를 팔았다. 도요타를 제치고 4년 만에 세계 1위 자동차업체 자리를 되찾았다. 9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미국 재무부는 상장 후 GM 주식을 매각해 공적자금을 회수했다. 지난해 GM 순이익은 전년보다 65% 증가한 76억달러를 기록했다. 창립 103년 역사상 최대 규모다.

◆해군 대위 출신 CEO

회사가 흑자기조로 전환한 뒤에도 그는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미국 디트로이트의 GM 본사. 디자인과 기술부문 핵심인력 400여명이 애커슨과 마주 앉았다. 애커슨은 GM이 낡은 관료주의적 타성에서 벗어나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년 전에 GM이 어땠는지 돌아봅시다. 지금도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라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애커슨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대위 출신이다. 1970년 폭파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그는 대위로 제대한 뒤 통신회사 MCI와 넥스텔을 거쳐 칼라일그룹에서 일했다. 해군 대위 출신답게 경영도 공격적으로 했다. GM 회생에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폰티악·새턴·허머·사브 4개 브랜드를 정리하고 2만1000여명을 해고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14개 공장도 폐쇄했다.

그의 공격적 성향은 볼트 배터리 사건에도 나타났다. GM은 전기차 볼트를 차기 성장 동력으로 키워갔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실시한 충돌 테스트에서 화재 가능성이 제기된 것. 애커슨은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볼트를 산 사람이 요구할 경우 차값 전액을 환불해주겠다고 말했다. 미 교통당국이 리콜 결정을 하지 않았지만 GM이 선수를 치고 나선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결정은 애커슨 CEO가 단독으로 내린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엔 미 의회 청문회에 직접 볼트를 몰고 출석, 볼트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쇼맨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모습은 볼트의 품질에 대해 가졌던 소비자들의 의구심을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