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설문지 하나만…" 요즘 참 듣기 힘든 소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030 기자의 아날로그 이야기
대상 모두 찾아가 질문했던 방법서 갤럽 '샘플링기법'으로 비약적 발전
SNS · CCTV로 '행동' 분석 쉬워져 '생각' 묻는 설문조사는 사라질 수도
대상 모두 찾아가 질문했던 방법서 갤럽 '샘플링기법'으로 비약적 발전
SNS · CCTV로 '행동' 분석 쉬워져 '생각' 묻는 설문조사는 사라질 수도
“무릇 가하다는 자는 9만8657인이며, 불가하다는 자는 7만4149명입니다.”
세종실록 세종 12년(1430년) 8월10일자 ‘호조에서 공법에 대한 여러 의논을 갖추어 아뢰다’란 제목의 글 끄트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세종은 고려 시절부터 사용해 왔던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을 대체할 새 법을 바꾸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 제도는 농사의 풍흉 정도에 따라 세금의 비율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간 관리들이 풍흉 수준을 자의로 정해 중간에서 세금을 착복하는 문제가 잇따르자 개혁에 나선 것.
세종은 이를 위해 1430년 3월 전국의 관리와 농민에게 의견을 묻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려 5개월 동안 17만2806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9만8657명이 제도를 바꿀 것에 찬성했고 7만4149명이 반대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 수립에 나선 세종은 1444년 ‘공법’을 확정하게 된다. 우리 역사 최초의 대규모 설문조사였다.
○‘샘플링 기법’으로 급격히 발전
특정 집단의 성격이나 특성, 혹은 어떤 사안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의견을 알기 위해 가장 널리 쓰이는 조사 방법은 설문이다. 말 그대로 직접 물어 답을 듣는 방법이다. 세종과 같은 예외도 있었지만 대개 설문조사는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된 이후 발전했다. 국민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명분을 얻으려는 위정자들이 앞다퉈 설문조사를 하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을 위해 도입하면서 기법도 크게 발전했다.
초창기 설문조사 방법은 모든 사람을 찾아다니며 질문하고 답을 듣는 것이었다. 요즘처럼 통신기술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설문조사를 할 수 있는 대상이 편중됐고 결과도 정확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설문조사 기법이 양과 질 측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930년대 미국의 조지 갤럽이 ‘표본추출(샘플링) 기법’을 도입하면서다. 1922년 여름, 대학생이던 갤럽은 용돈이나 벌 생각으로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세인트 루이스의 한 신문사가 독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설문조사 요원으로 뽑힌 것. 그가 한 일은 독자 5만5000명을 일일이 찾아가 신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뙤약볕 아래 같은 질문을 수천번 반복했던 갤럽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샘플링 기법을 고안하게 된다.
스위스의 수학자 야곱 베르누이가 만든 통계 이론을 기반으로 삼은 이 기법은 조사 대상 전체의 특성을 고려한 뒤 이에 따라 일정 비율의 사람을 무작위로 추출하는 것이다. 이 방법 덕분에 설문조사의 수요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빅 데이터’가 설문조사 없앨지도
설문조사가 항상 정확한 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질문이나 문항의 내용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그보다 근본적인 한계는 설문조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나 외국인 노동자 등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할 경우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이기 위해’ 그들에게 우호적인 답을 한다. 그래 놓고도 실생활에선 그들에게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 생각과 행동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설문조사는 정확성을 잃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보완책이 고안됐다. 사람들의 의견이 아닌 행동을 직접 관찰해 이를 바탕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다수의 사람을 조사하기는 어려워도 대상자의 행동방식을 통해 정확한 의견과 태도를 알아낼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행동분석이 점차 수월해지고 있다. 이른바 ‘빅 데이터(big data)’ 분석 방법을 통해서다. 현재는 웹사이트 방문 패턴이나 SNS에 올라오는 글처럼 인터넷 행동 위주다.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폐쇄회로TV(CCTV) 등을 이용해 일상의 행동까지 모두 수집,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 설문조사는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세종실록 세종 12년(1430년) 8월10일자 ‘호조에서 공법에 대한 여러 의논을 갖추어 아뢰다’란 제목의 글 끄트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세종은 고려 시절부터 사용해 왔던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을 대체할 새 법을 바꾸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 제도는 농사의 풍흉 정도에 따라 세금의 비율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간 관리들이 풍흉 수준을 자의로 정해 중간에서 세금을 착복하는 문제가 잇따르자 개혁에 나선 것.
세종은 이를 위해 1430년 3월 전국의 관리와 농민에게 의견을 묻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려 5개월 동안 17만2806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9만8657명이 제도를 바꿀 것에 찬성했고 7만4149명이 반대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 수립에 나선 세종은 1444년 ‘공법’을 확정하게 된다. 우리 역사 최초의 대규모 설문조사였다.
○‘샘플링 기법’으로 급격히 발전
특정 집단의 성격이나 특성, 혹은 어떤 사안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의견을 알기 위해 가장 널리 쓰이는 조사 방법은 설문이다. 말 그대로 직접 물어 답을 듣는 방법이다. 세종과 같은 예외도 있었지만 대개 설문조사는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된 이후 발전했다. 국민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명분을 얻으려는 위정자들이 앞다퉈 설문조사를 하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을 위해 도입하면서 기법도 크게 발전했다.
초창기 설문조사 방법은 모든 사람을 찾아다니며 질문하고 답을 듣는 것이었다. 요즘처럼 통신기술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설문조사를 할 수 있는 대상이 편중됐고 결과도 정확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설문조사 기법이 양과 질 측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930년대 미국의 조지 갤럽이 ‘표본추출(샘플링) 기법’을 도입하면서다. 1922년 여름, 대학생이던 갤럽은 용돈이나 벌 생각으로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세인트 루이스의 한 신문사가 독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설문조사 요원으로 뽑힌 것. 그가 한 일은 독자 5만5000명을 일일이 찾아가 신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뙤약볕 아래 같은 질문을 수천번 반복했던 갤럽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샘플링 기법을 고안하게 된다.
스위스의 수학자 야곱 베르누이가 만든 통계 이론을 기반으로 삼은 이 기법은 조사 대상 전체의 특성을 고려한 뒤 이에 따라 일정 비율의 사람을 무작위로 추출하는 것이다. 이 방법 덕분에 설문조사의 수요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빅 데이터’가 설문조사 없앨지도
설문조사가 항상 정확한 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질문이나 문항의 내용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그보다 근본적인 한계는 설문조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나 외국인 노동자 등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할 경우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이기 위해’ 그들에게 우호적인 답을 한다. 그래 놓고도 실생활에선 그들에게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 생각과 행동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설문조사는 정확성을 잃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보완책이 고안됐다. 사람들의 의견이 아닌 행동을 직접 관찰해 이를 바탕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다수의 사람을 조사하기는 어려워도 대상자의 행동방식을 통해 정확한 의견과 태도를 알아낼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행동분석이 점차 수월해지고 있다. 이른바 ‘빅 데이터(big data)’ 분석 방법을 통해서다. 현재는 웹사이트 방문 패턴이나 SNS에 올라오는 글처럼 인터넷 행동 위주다.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폐쇄회로TV(CCTV) 등을 이용해 일상의 행동까지 모두 수집,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 설문조사는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