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도 어머니에게 받은 '죽음의 트라우마'…'고골의 영혼'을 살찌우다
대학 다닐 때 읽은 책 가운데 《외투》라는 소설이 있었다. 신학과에 다니는 친구의 권유로 읽었는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관청 서기로 근무하는 가난한 주인공은 어렵사리 새 외투를 구입하지만 귀가 도중 외투를 강탈당하고 만다. 외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는 경찰서를 찾아 고위관리에게 하소연해보지만 정신병자 취급을 당한다. “어느 나라든지 민중의 지팡이는 이 모양인가!” 소설을 읽을 1980년대 당시 이런 독백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는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그는 혼령이 되어 추운 거리에 나타나 외투를 입은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자신의 외투라고 우기며 죄다 빼앗아간다. 마침내 유령은 외투를 찾아달라고 했을 때 자신을 미치광이 취급한 고위관리를 만나 그의 외투를 강탈한다. 이후 유령은 어둠의 거리로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의 작가는 러시아 사실주의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이다. 우크라이나 귀족 출신인 고골은 어린 시절을 시골 영지에서 보내면서 우크라이나의 전통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고골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할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전설과 민담을 어린 손자에게 자주 들려줄 정도로 민속문화에 능통했고, 아버지는 극작가로서 희곡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시도하는 등 연극적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에게서는 지나칠 정도의 신앙심을 물려받았다. 우크라이나 귀족 출신인 어머니 마리아는 몽상적 성격으로 광적인 러시아 정교회 신자였다.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고골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글쓰기와 연극에 남다른 재능과 관심을 보였다.

고골에게 작가의 길을 열어준 게 바로 그가 자란 우크라이나의 환경이었다. 소설《지깐까 근처 마을의 야화》는 그가 우크라이나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22세 때 쓴 작품이다. 그는 민담에 등장하는 다양한 귀신과 정령들에 대한 이야기 및 우크라이나의 시골풍경, 민속놀이를 작품에 담았다. 환상과 현실이 어우러지는 우크라이나 농촌 이야기는 러시아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런데 고골은 요즘 표현을 빌리면 ‘마마보이’였다. 어머니는 고골을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 정교 신앙으로 철저히 교육했다. 특히 말세에 다가올 최후의 심판과 지옥에 관한 공포 및 두려움을 아들에게 주입시키곤 했다.

어머니는 집안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성격이었는데 고골은 그런 어머니에게 복종하는 아이로 자랐다. 그는 모든 일을 어머니와 상의하는 소심한 성격의 인물로 성장했고 ‘죽음, 심판, 공포, 두려움’을 가슴에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야 했다.

그가 《외투》에서처럼 환상성과 사실성을 혼합하면서 유령을 등장시키는 등 괴기스럽고 의뭉스러운 그로테스크 세계를 선보였던 것도 어머니가 주입한 종교와 성장 환경의 영향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고골은 환상성에 머물지 않고 당시 러시아 사회의 도덕적 퇴폐와 관료 세계의 부정 등을 예리하게 풍자하면서 러시아 사실주의의 시조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마마보이’를 벗어날 수 있었던 건 27세에 떠나 10여년 동안 체류한 로마 여행이 계기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트라우마는 너무나 짙었다. 그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원고를 불사르며 10일간의 단식 끝에 43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최효찬 < 연세대 연구원 · 자녀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