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삼성과 CJ의 싸움을 보며
최근 삼성과 CJ 간 첨예한 갈등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14일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씨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삼성생명 주식 등을 반환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 CJ가 조직적으로 관여했느냐 여부다. 소송사실이 알려지자 CJ 측은 즉각 성명을 내고 “개인적인 문제일 뿐, 우리는 전혀 몰랐던 내용”이라고 했다.

나머지 하나는 소송 직후 불거진 삼성물산 직원의 ‘미행’ 사건이다. 이재현 CJ회장의 동선을 추적하며 동향을 파악했다는 것이 CJ 측 주장이다. 삼성은 “호텔신라 소유 부지에 대한 사업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이 회장 자택 인근을 둘러본 것은 사실이지만 미행을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뿌리깊은 불신이 도화선

[한경데스크] 삼성과 CJ의 싸움을 보며
그래서 시작된 것이 이른바 ‘진실게임’이다. 삼성은 CJ 측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행’사건을 언론에 공개하고 관련 자료까지 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송 또한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CJ 측 변호사와 이맹희씨 간 사전 접촉설도 제기하고 있다. CJ 역시 누가 어떤 의도로 이재현 회장 주변에 사람을 보냈는지를 낱낱이 밝히라며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이들 사건은 과거 삼성가의 후계자 선정과정, 삼성과 CJ의 끈질긴 악연 등과 맞물려 많은 얘깃거리를 쏟아내고 있다. 굴지 기업들이 얽혀 있는 데다 휘발성이 강한 사안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좋은 얘기들은 없다. 삼성 직원이 도중에 차량을 바꿔가며 이 회장을 따라붙었다는 정황도 놀랍지만 이중삼중의 포위망으로 해당 직원을 붙잡아낸 CJ의 기동력도 생경스럽긴 마찬가지다.

양측의 분쟁은 이제 서로를 비난하는 입씨름으로 치닫고 있다. CJ는 ‘성명 불상자(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명)’라는 법률 용어를 들어 삼성 측을 고소했고 삼성도 법전을 뒤적이며 ‘미행’이라는 단어의 적절성, 법적 처벌의 한계 등을 언급하고 있다.

CJ의 생래적 피해의식에 골육상쟁 논란을 의식한 삼성의 부담감이 겹치면서 양측은 더욱 단단하게 문을 걸어잠그고 있다. 그래서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할 여유가 없다.

모두 패자가 될 것인가

고 이병철 회장이 3남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결정한 때는 1971년이었다. CJ의 계열분리는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1997년에야 이뤄졌다. 그 오랜 세월 동안 CJ 측이 떠안아야 했던 불안과 상실감은 상당했을 것이다.

반면 삼성은 지난 몇 년간 삼성특검 사태와 관련 소송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러고도 최근 정치권의 ‘재벌 때리기’로 좌불안석이다. 그런 터에 CJ가 공개적으로 흠집을 내는 데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CJ 또는 이맹희 씨가 고 이병철 회장의 유지(遺志)를 거슬러가면서까지 유산배분소송을 제기한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두 그룹을 둘러싼 여론은 한마디로 ‘볼썽 사납다’는 것이다. 상대를 아무리 공박해봐야 양비론(兩非論)을 넘어서는 성과를 얻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이 마당에 국민들이 누구 편을 들겠는가.

지금이라도 서로 손을 내밀고 진솔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대리인들의 법적 공방으로 시시비비를 가릴 일이 아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당장의 불편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상대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 대한 기만이다.

조일훈 IT모바일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