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인쇄기가 멈춰간다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K인쇄소의 가동률이 올 들어 뚝 떨어졌다. 신간 서적 인쇄 물량이 예년에 비해 20%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이 인쇄소의 L부장은 “예년에는 인쇄기를 아침까지 돌려야 주문 물량을 맞출 수 있었는데 요즘은 새벽 5~6시면 작업이 끝난다”며 “휴일 특근도 필요없게 됐다”고 말했다.

출판 시장에 드리운 불황의 먹구름이 짙다. 신간 서적 판매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데다 전자책의 부상, 종이값 인상, 선거까지 겹쳐 출판사마다 울상이다.

서울 홍익대 인근에 몰려 있는 중견 출판사들의 1~2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줄었다. B출판사의 J부장은 “한 대형 출판사는 지난해 말 밀어냈던 책이 대량으로 반품되면서 1월 매출이 10억원이나 축소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출판 시장이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얼어붙은 경우는 없었다”며 “대중매체 광고를 끊는 등 마케팅과 관리 비용을 줄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H출판사 S본부장은 “다음달부터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4월 국회의원 선거, 7월 런던 올림픽, 12월 대통령 선거 등 굵직한 정치ㆍ스포츠 이벤트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는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정치ㆍ스포츠 이벤트에 쏠릴 것”이라며 “출판계에는 최악의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종이값 인상도 예고돼 있다. 주요 제지업체는 이달부터 3~7% 공급가격을 인상하겠다는 공문을 지난달 지업사들에 보냈다.

제지업체들은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올라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인쇄용지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펄프 가격은 지난해 12월 t당 560달러에서 올 1월 580달러, 2월 605달러, 이달 들어 640달러로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부재료인 라텍스도 3월 현재 당 1700원으로 최근 석달 사이 20% 올랐다.

한 제지업체 본부장은 “가장 많이 쓰는 4×6, 국전 사이즈 모조지 인상폭이 클 것 같다”며 “책값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D출판사 C편집장은 “선거 등으로 인한 종이 수요와 가격 인상 전에 물량을 확보하려는 대형 출판사의 가수요로 인해 더 큰 폭의 종이값 인상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종이값 결제 조건에 따라 할인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큰 출판사보다 중소 출판사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편중 현상도 출판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도가니’ ‘나꼼수’ ‘해품달’ 등 영화나 방송 등을 타고 유행하는 책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슈화된 책에만 수요가 붙으면서 팔리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의 판매량 간극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교보문고에 입고된 신간 4만5629종의 종당 판매부수는 평균 140권. 교보문고가 시장의 10분의 1가량을 점유한다고 보면 새책 1종당 1400권이 팔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초판 인쇄 기준인 2000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로 대부분의 출판사가 손해를 보면서 출판을 했다는 얘기다.

종합베스트셀러 50위권의 판매량은 지난 10년 동안 4.2배나 늘었지만 전체 도서 판매량은 같은 기간 2배 증가에 그쳤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