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薄熙來) 중국 충칭시 서기의 아들도 못해낸 큰일을 이뤘다고 중국 유학생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더군요.”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의 학생 자치기구인 ‘옥스퍼드유니언’ 회장에 지난 2일 당선된 한국인 이승윤 씨(22·사진)의 목소리는 상기돼 있었다. 글로벌 리더의 ‘산실’이라는 옥스퍼드유니언 회장에 한국인이 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인으로는 1977년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에 이어 두 번째다.

옥스퍼드대 정치철학경제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씨는 유니언 회장 선거에서 영국 학생보다 29표를 더 얻어 당선됐다. 임기는 9개월로 이씨는 3개월간 취임준비 기간을 거친 뒤 6월부터 회장직을 맡게 된다.

옥스퍼드유니언에는 재학생의 70%가 넘는 1만2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1823년 영국 대학들이 저학년생들에게 수업시간에 신학과 정치 문제에 관한 토론을 금지시키자 이에 반발해 별도의 토론 조직을 만든 게 학생회의 시발점이다. 영국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윌리엄 글래드스턴을 비롯해 로버트 세실, 해럴드 맥밀런 등 역대 총리들이 유니언 회장 출신이다. 또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와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옥스퍼드대에 유학했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유니언 회원이었다.

특히 유니언 주최로 학기 중 매주 열리는 공개강연에는 세계 유명인사들이 연사로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사망한 팝 가수 마이클 잭슨 등도 강연했다.

지난해 유니언의 재정담당 부회장으로 활동했던 이씨는 “동양인 유학생으로 영국 명문 사립학교의 인맥 장벽을 극복하게 돼 기쁘고 앞으로 보수적인 학교에 새바람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대원외고 졸업 후 2010년 옥스퍼드에 입학한 이씨는 “고교 1~2학년을 미국 버지니아주 샬럿츠빌 인근의 친척집에 기거하며 영어를 익혔지만 영국 현지 학생들과 토론하며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마치 연극을 하듯 연설문안을 모두 외워가 학생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유니언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옥스퍼드대 입학 직후 유니언 주최 토론회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영국 야당이 정권을 잡는 경우를 가상해 조직한 섀도캐비닛(예비 내각) 멤버들과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갖게 됐고, 이후 가디언 더타임스 등 유력 언론 편집장, 피아니스트 랑랑 등과도 토론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토론 주제와 연사선정 등에 권한을 지닌 회장직에 욕심을 내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현지 학생들에 비해 언어가 서투른 유학생이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영국 학생 중엔 “영국 최고의 명사들을 상대하는 자리인데 ‘젠틀맨의 매너’를 모르는 동양인이 옥스퍼드의 얼굴을 맡는 것은 부당하다”며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 3년 전 유니언 회장직에 도전했던 보시라이 서기의 아들 보과과(薄瓜瓜)는 중국 유학생들의 몰표에도 결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낙마했었다.

이씨는 “영국 학생들의 텃세는 실력으로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개강연 콘텐츠를 지식재산으로 활용하는 등 재정사업을 확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씨의 아버지는 의사 이홍근 씨, 어머니는 정성혜 인하대 생활과학대 교수다. “부모님께 당선 소식을 전하자 ‘젊은 나이에 주목받는 자리에 올랐으니 언제나 겸손하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