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심판과 용서의 눈
경제학을 30년 넘게 배우고 연구하고 가르쳤지만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좌절감이다. 연구한다는 것과 현실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 존재한다고 한들 현실은 늘 따로 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보다 나은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론은 현실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은 정치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무엇 하나 정치를 통하지 않고 이뤄지는 것이 없지 않은가. 언론의 자유가 있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절차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사안에 따라 자기의견을 당당히 피력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가 아니면 불리한가에 따라 너무나 많은 목소리와 혼란이 존재한다.

이론이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정치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통해서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의 정치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정권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정권의 쟁취를 위해서는 국민이 원하는 어떤 것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기에는 우리가 가진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국민도, 정치인들도 또 외국인들도 모두 잘 안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이 나라를 그리스가 겪고 있는 바와 같은 위기로 몰아가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때로는 거짓말의 유용성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지도자에게 거짓은 치명적인 것이다. 정치지도자의 거짓을 국민은 처절하게 심판해야만 하고 치열하게 반성할 때 용서할 줄도 알아야 한다. 표를 얻기 위해서 헛된 공약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국민을 무엇으로 보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야당 지도자들의 말 바꾸기 또한 가관이다. 그들은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이 스스로 협상을 시작한 FTA를 폐기하겠다고 하니 이런 위험한 정치세력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다면 진전된 FTA의 보완책에 대해 거론했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중요한 선거가 두 번 있다. 역대 선거를 보면 우리 국민의 선택은 절묘하고 현명했다. 그러나 거짓으로 무장한 정치인에 대한 심판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생각이다. 우리 국민은 캐나다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1993년 후반기에 치러진 선거 때까지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집권당의 의석 수는 160석이 넘었다. 그러나 그해 선거에서 보수당은 단지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폐족이 된 것이다.

실패한 정치세력에 대한 응징은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캐나다는 지난해 5월 치러진 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스티븐 하퍼가 이끄는 보수당이 다시 집권하고 있다.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했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당이 되기 위해 18년이 걸린 것이다. 캐나다의 국민과 같이 우리 국민도 정치세력에 일차적으로 냉정했으면 좋겠고 진정한 반성에 대해 용서할 능력 또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심판과 용서의 시각에서 지금 우리 여당과 야당의 지도부를 바라보시라.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과장해서 말한다면 정치는 민주주의의 모든 것이다. 정치가 방향타를 잃고 헤매기 시작하면 경제도, 사회도, 가정도 모든 의사결정이 뒤죽박죽 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환경을 규정하고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결정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훌륭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성을 모르는 정치인을 우리는 거부해야 한다. 국민을 내심 무시하는 정치인을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높은 이상의 정치인들을 보다 많이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의 계절, 자신이 몸바쳐온 학문의 유용성에 대해 반성하는 봄이다. 이런 반성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치가 잘 이뤄지길 바라는 것은 과연 헛된 꿈일까?

조장옥 <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