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베어링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권동우 씨(46)는 작년 입대해 전방부대에 근무하는 장남이 첫 휴가를 나와 전한 얘기를 듣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20여명의 병사들이 비좁은 생활관(내무반) 공간에서 함께 잠자는데다 한겨울에도 찬물 샤워를 한다는게 아들의 말이었다. 온수 나오는 시간이 짧아 후임병들에게는 제대로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는 “병영시설이 20여년 전 내가 군 생활을 할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병영시설 낙후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많이 달라졌다지만 30년 전 병영시설을 그대로 쓰는 곳도 허다할 정도다. 해안이나 후방부대 시설은 크게 허술한 실정이다. 예산을 효율화하되 병영시설 현대화에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연내 대대급 침상 100% 침대로 교체

예비역들이 군생활 중 가장 불만족스러웠던 공간으로 꼽는 곳이 생활관이다. ‘춥고 덥다’는 불만이 대부분이다. 해병대 사병으로 백령도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김모씨(30)는 겨울만 되면 그곳의 혹한을 떠올린다. 그는 “생활관의 연통식 난로에 넣을 기름을 아끼기 위해 두터운 옷을 몇 겹씩 껴입고 잤다”고 말했다. 한 예비역 장교는 “아직까지 나무침상 위에 얇은 매트리스 깔고 자는 군인은 아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군장병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생활관 현대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연말까지 대대급 모든 부대의 침상을 개인형 침대로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1인당 공간 역시 종전 평균 2.3㎡에서 6.3㎡로 세 배가량 확대한다. 이를 위해 올해 1조1321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육군 관계자는 “대대급 이하 부대에 대해서도 2020년까지 침대 보급을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병들이 복무기간 중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컴퓨터 보급을 확대하고 온라인 학습 콘텐츠를 늘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지식’에 대한 병사들의 욕구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국방부는 병사들이 원격대학 강의를 듣거나 각종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생산적 복무여건 보장 프로젝트’도 전개하고 있다.

◆시설 개선, 선진 병영문화 구축의 핵심

좁은 생활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병사들 간의 구타·폭언·얼차려와 강압적 상하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은 지금도 TV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 소재로 즐겨 다뤄진다. 이런 구태의 병영문화 개선도 시설 현대화와 맞물려 있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확립되어야 할 군 조직의 특성이 이런 통제형 병영문화를 낳은 요인이지만 침상으로 대표되는 생활관에서 부대끼며 기거해야 하는 환경에서 비롯된 탓도 크기 때문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막연하게 ‘나라를 지킨다’는 가치를 넘어 신세대 사병들이 존중할 수 있는 리더십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병영도 이제 자기계발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문채봉 국방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제설작업 등 비전투 임무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대신 자기계발 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방부는 올초 태스크포스(TF)인 ‘병영문화개선단’을 구성, 병영 악습 축출에 나섰다. 오는 6월까지 미국 영국 등 선진 사례를 전수 조사할 방침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부대 내 인터넷 사용을 제한하는 게 옳은지 등 일반 장병의 눈높이에 맞춘 아이디어를 우선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길/김보형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