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더 과감하게 시장 선점 … 폭스바겐 추월 두고 봐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6개월 만에 세계 경기침체의 진원지인 유럽을 다시 찾았다. 위기 돌파를 위한 현장경영에 나선 것이다. 정 회장은 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해 현대·기아차 유럽지역 사업 현황 회의를 주재하며 유럽 사업 전반을 집중 점검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유럽 판매가 순조롭지만 경기침체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정신무장을 시키기 위해 6개월 만에 현장을 다시 찾은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유럽 자동차 수요는 감소세를 지속 중이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이 기간 중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5.1%였던 시정 점유율은 올해 1월 5.4%로 증가해 위기에 강한 면목을 발휘했다. 하지만 수요 회복이 더뎌지고, 경쟁 업체들의 할인 공세가 현실화되면 현대·기아차도 출혈이 불가피하다. 정 회장이 짧은 기간에 유럽시장을 다시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에서 돌파구 찾아라”

정 회장은 업무 보고를 받은 뒤 “생산에서부터 판매·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에 걸쳐 창의적인 사고로 위기에 적극 대응하라”고 주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고객의 목소리에 더욱 귀기울이고, 유럽에서 도출한 해법이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위기 극복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 회장의 이 같은 주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 노하우를 되살려 시장이 어렵고 경쟁사들이 주춤할 때 과감한 마케팅 전략으로 인지도를 한 단계 높이겠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자 2009년 초 ‘어슈어런스 프로그램(구매 후 1년 내 실직하면 차를 되사주는 프로그램)’이란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인지도와 점유율을 크게 높였다.

정 회장은 유럽법인장들에게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며 유럽에서 길을 찾으면 글로벌 시장의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독창적이고 과감한 전략으로 시장을 선점해 우리 경제의 활성화에 보탬이 돼 달라”고 주문했다. 현대·기아차가 위기의 유럽시장에서 어떤 ‘깜짝 카드’를 꺼낼지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모터쇼 현장에서 경쟁 업체 동향 파악

정 회장은 7일 ‘2012 제네바 모터쇼’가 열리는 ‘제네바 팔렉스포’를 방문해 현대·기아차는 물론 경쟁 업체의 전시장을 둘러보며 신기술 및 디자인 등 업계 동향을 파악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선보인 기아차 신형 ‘씨드(cee’d)’에 대한 현지 언론과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고 현장에 나와 있는 임직원들에게 위기 극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어 아우디 폭스바겐 도요타 BMW 등 경쟁 업체의 전시장을 방문해 신차 출시 동향 등을 파악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유럽 소비자들이 원하는 취향을 면밀히 파악해 이를 유럽 전략형 모델에 적극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정 회장은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자동차 전문지 인터오토뉴스(InterAutoNews)지가 선정·수여하는 ‘2011년 글로벌 최고 경영인상’을 수상했다. 올해 11년째인 ‘글로벌 최고 경영인상’은 이탈리아 자동차 전문 기자단의 투표로 선정된다. 올해 정 회장은 2위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 회장과 3위 앨런 멀럴리 포드 CEO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제네바=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