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産 판유리 공습…국산 유리 '휘청'
국내 유리시장을 독과점해온 한국유리와 KCC가 외산 유리 공세에 휘청거리고 있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탓에 국내 시장 주도권을 위협받고 있는 데다 재고 증가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판유리산업협회는 지난해 건축용 판유리 수입량은 36만5567으로 2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6%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국내 판유리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한국유리와 KCC의 지난해 전체 판매량은 112만1057에 그쳐 국산 시장점유율이 81%에서 75%로 낮아졌다.

협회 측은 동남아산 판유리 수입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36만5566이던 판유리 수입 물량 가운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아세안 국가 비중은 44%로 중국산(31%)을 크게 앞질렀다. 2010년 중국산이 수입 유리의 43%를 차지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안방을 독식해오던 국산 유리업체들이 반덤핑 관세에 안주하며 경쟁력 제고를 등한시한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산 판유리에 12.04~36.01%의 반덤핑 관세가 부과되면서 가격 경쟁력 상실을 막았지만 동남아산에 결국 덜미를 잡혔기 때문이다.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일반관세(8%)가 부과되지 않는 동남아산 판유리 가격은 국산에 비해 10~15%가량 싸다. 김용신 한국판유리산업협회 부장은 “동남아산 유리가 가격 경쟁력을 갖춘 만큼 수입량은 더 늘어날 것”이라며 “국산 유리업체들의 고전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KCC와 한국유리는 판매 부진 탓에 재고 부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KCC와 한국유리는 각각 13만~15만 안팎의 재고를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연간 생산량의 15%에 이르는 물량이다.

이 때문에 국내 유리업체들은 생산 일부 중단이라는 고육책을 내놨다. 한국유리는 지난 1월 과잉 재고를 견디지 못하고 군산공장 고로 1기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KCC도 이천 판유리공장의 고로 1기 가동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재고 떨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판유리는 품질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동남아산 판유리 가격이 오르지 않는 한 국산 유리의 경쟁력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로 1기를 재가동하는 데 700억~1000억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생산 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도 여의치 않다”며 “건설 경기 회복 등으로 유리 수요가 늘지 않는 한 국내 유리업체들은 판매 부진과 재고 증가라는 이중고에 시달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산 유리의 가격 인하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소다회 등 유리 원료와 벙커C유 등의 가격 인상으로 제조원가가 크게 높아진 탓이다. 국내 유리업체들은 원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8월 가격을 10%가량 인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내리면 그만큼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여서 가격 인하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