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산으로 가버린 일자리 논쟁
애플이 미국 내에서만 직·간접적으로 51만4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주장했다. 생산시설을 중국 등 해외로 옮긴 애플이 고용창출에 뭘 기여했느냐는 일각의 비판에 대한 반박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애플이 밝힌 수치의 타당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애플을 둘러싼 일자리 논란의 불똥은 국내로도 튀고 있다. 삼성전자도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다. 실업에 대한 분노의 대상이 정치인에서 기업으로 옮겨가는 배경이 수상하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실패를 호도할 대상 물색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비판을 해도 이건 너무 일방적이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아웃소싱 비판은 정치적 선동

해외 아웃소싱이 그토록 비난받아야 하는지 우선 그것이 의문이다.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는 아웃소싱이 장기적으로 미 경제에 약이 된다고 했다가 정치인의 집단 난타를 당한 적이 있다. 정치인들은 밖으로 나간 일자리를 단골메뉴 삼아 기업을 비난하지만 같은 조건으로 자국 내에서 공급이 가능한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불리한 여건을 상쇄할 유인책부터 내놓고 말해야 한다. 이들은 기업들이 그렇게라도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지금의 일자리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아예 언급조차 안 한다. 오로지 들어오는 투자는 환영, 나가는 투자는 금지라면 수출은 하되 수입은 하지말라는 보호무역과 진배없다.

해외 아웃소싱을 비난하는 이들은 또 외국 노동자의 희생을 들먹인다. 저임의 착취라는 주장이다. 부당한 노동환경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기업들에 원가절감 자체를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아웃소싱은 일방의 요구로만 되는 게 아니다. 후발국도 기대하는 것이 있다. 해외 노동자의 임금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결국 임금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또 아웃소싱은 후발국의 기술흡수 경로 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아예 첨단산업의 고용 창출력을 문제 삼는다. 아직도 산업혁명 당시의 기계 파괴운동, 일체의 기술혁신을 노동절약적이라고 규정한 마르크스적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제품혁신, 공정혁신이 단기적으로 실업문제를 촉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혁신이 새로운 시장, 산업을 통해 초기 실업을 만회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다. 이른바 보상이론(compensation principle)이다. 말들이 많은 정보기술(IT)의 고용효과도 보상이론이 적용된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 결론이다.

교육 실패 외면, 기업만 비난

혁신을 양극화 주범으로 몰아붙이는 주장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면 노동수요도 달라진다. 산업의 수요패턴이 고숙련 쪽으로 향하는데 인력공급이 못 따라가면 구조적 실업은 불가피하다. 여기까지는 이들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교육의 실패는 외면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소득불균형은 교육과 기술의 경주에 좌우됐다는 연구가 있다. 기술이 교육을 앞지르면 불균형이 확대되다가 교육이 기술을 따라잡으면 불균형은 축소됐다는 얘기다.

일자리로 기업의 모든 기여를 측정하자는 주장도 다분히 선동적이다. 오로지 일자리만을 위해 망하는 기업을 칭송이라도 해야 하는가. 애플은 자신들의 궁극적 임무가 실업률 퇴치가 아니라고 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윤 창출 없이는 투자도 일자리도 없다. 아예 먼 옛날로 돌아가자는게 아니라면 그 저의가 의심스러운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안현실 < 논설·전문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