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애니콜 이어 갤럭시 신화…삼성폰 '성공 스토리' 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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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끝없는 혁신'승부수'
T100·벤츠폰·블루블랙 …출시때마다 '텐밀리언셀러'
'옴니아 부진'딛고
후속 갤럭시시리즈 '빅히트'…하드웨어 + SW + 콘텐츠, 글로벌 '스마트 혁명' 주도
끝없는 혁신'승부수'
T100·벤츠폰·블루블랙 …출시때마다 '텐밀리언셀러'
'옴니아 부진'딛고
후속 갤럭시시리즈 '빅히트'…하드웨어 + SW + 콘텐츠, 글로벌 '스마트 혁명' 주도
1997년 가을. 삼성전자의 이기태 무선사업부 이사와 신종균 개발팀 리더가 유럽이동통신사 A사를 찾았다. 유럽 규격의 휴대폰 SGH-200을 팔기 위해서였다. “담당자가 곧 나오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안내 담당 직원이 데리고 간 곳은 건물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기다리는 대기실이었다. 작은 방에 탁자 하나와 의자 몇개가 전부인 썰렁한 곳이었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실내는 냉기가 흘렀다. 과장 직급인 젊은 담당자가 나타났다. “먼저 우리 회사의 품질 테스트부터 통과한 뒤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그것으로 출장 미팅은 끝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2년. 전 세계 이동통신사들의 이익단체인 세계이동통신협회(GSMA)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2’에서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2’를 각각 ‘최고의 휴대폰 제조업체’와 ‘최고의 스마트폰’으로 선정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억8000만대의 휴대폰을 판매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스마트폰 1위뿐만 아니라 휴대폰 전체시장에서 세계 1위 등극을 목전에 두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겪었던 시련과 설움들을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극복해낸 결과다.
○애니콜, 신화의 시작
삼성전자의 휴대폰 비즈니스는 1994년 10월 ‘애니콜’ 브랜드를 단 첫 휴대폰 ‘SH-770’으로 본격화됐다. 1988년 최초의 휴대폰 ‘SH-100’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대폰은 역시 모토로라’라는 게 당시 세간의 인식이었다. SH-770은 이중안테나 등 신기술을 채택해 통화 품질을 끌어올리고 소형 경량화에 성공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구호를 내건 마케팅도 한몫했다. 폭발적인 인기를 거두면서 1995년 말까지 40만대가량 판매됐다. 이를 바탕으로 1995년 8월 국내 시장에서 모토로라를 제치는 데 성공했다.
1996년 세계 최초로 서비스에 들어간 CDMA(코드분할다중통신) 이동통신은 해외 진출의 발판이 됐다. 정부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이동통신 사업을 선정하고, 1992년 8월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4사와 함께 기초기술을 개발했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최초의 CDMA 폰 SCH-100의 무게는 175으로 당시 기준으론 초경량 제품이었다. 여기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1997년부터 본격적인 해외 수출에 나서게 된다. 홍콩 허치슨에 SCH-100을 수출한 것이 처음이었다. CDMA 서비스를 갓 시작한 미국 이통사 스프린트와의 수출 계약은 본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의 첫걸음이었다. 수출 물량은 1996년 16만대에서 1997년 76만대, 1998년 240만대로 급증했다.
○‘남들과 다르게’… 끊임없는 혁신으로 승부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전략을 중점적으로 펼쳐나갔다. 중저가 제품 위주의 전략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모토로라 노키아 등과의 경쟁 속에서 빠르게 해외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고급형 제품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야 했다. 최초의 유럽 방식(GSM) 휴대폰 ‘SGH-600’의 성공은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1998년 제품 출시 당시 삼성전자는 다른 업체들이 내놓은 비슷한 제품보다 10%가량 높은 가격을 책정했었다. 이 제품은 960만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2002년 출시된 폴더형 휴대폰 ‘T100’은 고가이고 전력 소모가 많은 LCD 컬러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바 타입의 기존 제품과 달리 과감히 폴더형 디자인을 채택한 것도 호평을 받았다. 이 제품을 필두로 ‘E700(벤츠폰)’ ‘D500(블루블랙)’ 등 잇따라 1000만대 이상 판매되는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모토로라 노키아 소니에릭슨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2005년 모토로라가 내놓은 폴더형 경량 휴대폰 ‘레이저’는 국내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를 위협했다. ‘모토로라 쇼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노키아는 저가형 휴대폰을 내놓으면서 시장 점유율을 40%대까지 끌어올렸다. 영업이익률뿐만 아니라 매출에도 적신호가 왔다. 2007년 새로 무선사업부장을 맡은 최지성 당시 사장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흥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원가 절감을 위해 셀 방식으로 공장 운영 방식을 바꾸고 삼성 특유의 공급망관리(SCM)도 도입했다. 이 같은 혁신을 바탕으로 2008년에 노키아에 이은 세계 2위 업체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위기를 기회로
하지만 2009년부터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의 진격은 삼성전자에 뼈아픈 일격을 가했다. 이동통신사의 주문대로 제품을 만들고 국가별 유통 업체들을 관리하는 전통적인 휴대폰 비즈니스의 틀에서 벗어나있던 애플의 행보는 기습 그 자체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 운영체제를 채택한 ‘옴니아’ 시리즈는 아이폰에 참패를 거듭했다.
애플의 도전은 삼성전자에 위기이자 기회였다. 2010년 6월 전격작전을 펼치듯이 출시한 ‘갤럭시S’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 경쟁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폰4와의 경쟁을 겨냥한 고성능 하드웨어와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개선 노력은 전 세계 이용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외국산 제품에 보수적인 일본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면서 “아이폰이 뒤흔든 시장에 삼성전자가 뛰어들어 대부분의 일본 업체를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말 출시된 ‘갤럭시S2’는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가 됐다.
삼성전자는 올해를 기점으로 ‘스마트 혁명’을 이끄는 혁신 업체로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전자펜 기능을 탑재해 이용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활용도를 높인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꼽힌다. 자체적인 클라우드 기반의 콘텐츠 마켓을 구축하는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이다. 인텔 등과 손을 잡고 자체 개발한 바다 OS를 개방해 집중 육성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를 아우르는 스마트 혁명의 승리자가 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2년. 전 세계 이동통신사들의 이익단체인 세계이동통신협회(GSMA)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2’에서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2’를 각각 ‘최고의 휴대폰 제조업체’와 ‘최고의 스마트폰’으로 선정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억8000만대의 휴대폰을 판매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스마트폰 1위뿐만 아니라 휴대폰 전체시장에서 세계 1위 등극을 목전에 두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겪었던 시련과 설움들을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극복해낸 결과다.
○애니콜, 신화의 시작
삼성전자의 휴대폰 비즈니스는 1994년 10월 ‘애니콜’ 브랜드를 단 첫 휴대폰 ‘SH-770’으로 본격화됐다. 1988년 최초의 휴대폰 ‘SH-100’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대폰은 역시 모토로라’라는 게 당시 세간의 인식이었다. SH-770은 이중안테나 등 신기술을 채택해 통화 품질을 끌어올리고 소형 경량화에 성공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구호를 내건 마케팅도 한몫했다. 폭발적인 인기를 거두면서 1995년 말까지 40만대가량 판매됐다. 이를 바탕으로 1995년 8월 국내 시장에서 모토로라를 제치는 데 성공했다.
1996년 세계 최초로 서비스에 들어간 CDMA(코드분할다중통신) 이동통신은 해외 진출의 발판이 됐다. 정부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이동통신 사업을 선정하고, 1992년 8월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4사와 함께 기초기술을 개발했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최초의 CDMA 폰 SCH-100의 무게는 175으로 당시 기준으론 초경량 제품이었다. 여기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1997년부터 본격적인 해외 수출에 나서게 된다. 홍콩 허치슨에 SCH-100을 수출한 것이 처음이었다. CDMA 서비스를 갓 시작한 미국 이통사 스프린트와의 수출 계약은 본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의 첫걸음이었다. 수출 물량은 1996년 16만대에서 1997년 76만대, 1998년 240만대로 급증했다.
○‘남들과 다르게’… 끊임없는 혁신으로 승부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전략을 중점적으로 펼쳐나갔다. 중저가 제품 위주의 전략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모토로라 노키아 등과의 경쟁 속에서 빠르게 해외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고급형 제품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야 했다. 최초의 유럽 방식(GSM) 휴대폰 ‘SGH-600’의 성공은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1998년 제품 출시 당시 삼성전자는 다른 업체들이 내놓은 비슷한 제품보다 10%가량 높은 가격을 책정했었다. 이 제품은 960만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2002년 출시된 폴더형 휴대폰 ‘T100’은 고가이고 전력 소모가 많은 LCD 컬러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바 타입의 기존 제품과 달리 과감히 폴더형 디자인을 채택한 것도 호평을 받았다. 이 제품을 필두로 ‘E700(벤츠폰)’ ‘D500(블루블랙)’ 등 잇따라 1000만대 이상 판매되는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모토로라 노키아 소니에릭슨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2005년 모토로라가 내놓은 폴더형 경량 휴대폰 ‘레이저’는 국내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를 위협했다. ‘모토로라 쇼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노키아는 저가형 휴대폰을 내놓으면서 시장 점유율을 40%대까지 끌어올렸다. 영업이익률뿐만 아니라 매출에도 적신호가 왔다. 2007년 새로 무선사업부장을 맡은 최지성 당시 사장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흥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원가 절감을 위해 셀 방식으로 공장 운영 방식을 바꾸고 삼성 특유의 공급망관리(SCM)도 도입했다. 이 같은 혁신을 바탕으로 2008년에 노키아에 이은 세계 2위 업체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위기를 기회로
하지만 2009년부터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의 진격은 삼성전자에 뼈아픈 일격을 가했다. 이동통신사의 주문대로 제품을 만들고 국가별 유통 업체들을 관리하는 전통적인 휴대폰 비즈니스의 틀에서 벗어나있던 애플의 행보는 기습 그 자체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 운영체제를 채택한 ‘옴니아’ 시리즈는 아이폰에 참패를 거듭했다.
애플의 도전은 삼성전자에 위기이자 기회였다. 2010년 6월 전격작전을 펼치듯이 출시한 ‘갤럭시S’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 경쟁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폰4와의 경쟁을 겨냥한 고성능 하드웨어와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개선 노력은 전 세계 이용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외국산 제품에 보수적인 일본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면서 “아이폰이 뒤흔든 시장에 삼성전자가 뛰어들어 대부분의 일본 업체를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말 출시된 ‘갤럭시S2’는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가 됐다.
삼성전자는 올해를 기점으로 ‘스마트 혁명’을 이끄는 혁신 업체로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전자펜 기능을 탑재해 이용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활용도를 높인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꼽힌다. 자체적인 클라우드 기반의 콘텐츠 마켓을 구축하는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이다. 인텔 등과 손을 잡고 자체 개발한 바다 OS를 개방해 집중 육성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를 아우르는 스마트 혁명의 승리자가 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