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펩시코·HP·듀폰의 공통점은? 여성 CEO !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휴렛팩커드(HP)와 IBM이 나란히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했다. 이베이 출신의 멕 휘트먼이 지난해 9월 HP CEO가 됐고, 지난달에는 버지니아 지니 로메티가 IBM 최초의 여성 CEO로 취임했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CEO 자리에 올라 후배 여성들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되고 있다.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의 여성 CEO 비율은 2000년 0.6%(3명)에서 올해 3.6%(18명)로 높아졌다. 18명 중 14명은 외부 영입이 아닌 내부 승진을 통해 CEO로 선임됐다. CEO가 여성인 기업의 업종도 화장품 식료품 의류 등을 넘어 IT 화학 에너지 금융 등으로 다양해졌다.

한국에서도 여성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지만 여성이 경영진으로까지 승진하는 데는 유·무형의 장벽이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종업원 1000명 이상 한국 기업의 임원 중 여성은 6.2%에 불과하고 상장 기업의 여성 CEO 비율은 1%도 안 된다. 글로벌 기업의 여성 CEO들은 어떻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거대 기업의 수장이 될 수 있었을까.

글로벌 기업의 여성 CEO들은 도전정신 등 남성적인 면과 동료를 배려하는 여성적인 면을 함께 갖췄다. 여성은 추진력과 리더십이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동시에 참여와 소통을 중시하는 여성의 장점을 발휘한 것이다. 열정과 결단력을 바탕으로 조화로운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는 인드라 누이 펩시코 CEO가 대표적인 사례다.

여성 CEO는 젊은 시절부터 주요 보직을 거치면서 경영자로서 바탕을 닦았다. 여성들은 직장 초년병 때부터 핵심 업무에서 제외돼 시간이 갈수록 승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험을 많이 한다. 일찍부터 회사의 핵심 업무를 맡는다면 임원이나 경영자로 승진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제록스의 우르술라 번스는 1980년 인턴으로 입사해 2009년 CEO가 되기 전까지 글로벌 제조, 기업전략 서비스, 문서 시스템 및 솔루션 그룹 등 주요 사업부를 두루 거쳤다.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의 제도와 문화도 중요하다. HP IBM 크래프트푸드 듀폰 등 여성이 CEO인 기업들은 성(性) 다양성 지표를 통해 임원 중 여성의 수가 일정 비율 이상이 되도록 관리하며, 여성 임직원을 위한 역량 개발 및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육아휴가를 사용한 직원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성과평가 시스템을 개편했다.

한국 기업이 여성 인력을 보다 잘 활용하고 나아가 글로벌 기업과 같은 여성 CEO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정한 목표치를 정해 여성 관리자 및 임원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CEO 후보군인 여성 임원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여성 인력을 주요 보직에 배치해 전문성을 높이고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닦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이미 여성들은 주요 국가고시에서 수석을 차지하는 등 남성을 능가하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성취에 대한 여성들의 열망과 도전정신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성 다양성을 존중하는 제도와 문화가 뒷받침된다면 한국의 주요 기업에서도 머지않아 여성 CEO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원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jw2010.kim@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