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3000만원 선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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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오늘도 여전히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2008년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패한 뒤 힐러리 클린턴이 띄운 이메일 동영상에서 한 말이다.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인사라는 명분이었지만 실은 경선을 치르면서 진 빚 갚는 것을 좀 도와달라는 호소였다. 클린턴은 경선 과정에서 대략 2200만달러의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정치자금 관리는 비교적 투명하게 이뤄지는 데 비해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 수준은 벗어났다지만 일단 출마해 상대와 경쟁을 벌이게 되면 법정 선거비용을 훌쩍 뛰어넘어 돈을 쓰는 경우가 많다. 30억원을 써야 당선되고 20억원이면 낙선한다는 ‘30당·20락’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을 정도다. 요즘도 선거때마다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는 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이 수십명씩 나온다. 2009년 11월엔 한 자치단체장이 62억원이나 되는 선거 빚 독촉에 시달리다 24억원을 받고 산업단지 구획을 변경해준 게 화근이 돼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돈 안쓰고 당선된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일본의 작가·영화감독·탤런트였던 아오시마 유키오는 1994년 지방선거에서 ‘무위(無爲)의 선거운동’을 내걸고 출마해 도쿄도지사에 당선됐다. 선거사무소 팻말을 아파트 문 옆에 붙여 놓고 집에서 책읽기, TV선거방송, 선거공보 등의 선거운동을 하는 데 딱 20만엔을 썼다.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그의 참신함을 높이 샀던 것이다.
3000만원만 쓰겠다며 4·11 총선에 도전중인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가 연일 화제다. 공천 기탁금 300만원을 낸 것으로 시작된 그의 선거비 지출은 지난 8일까지 2183만원에 불과했다. 점심식사값 회계사비용 사진값 주유비 등 세세한 내역을 공개하며 ‘맑은 선거운동’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상대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만큼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란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노력 없이 얻는 비례대표를 사양하겠다는 패기, 스스로 번 돈으로 선거를 치르려는 반듯함, 모든 비용을 공개하는 당당함 등에선 구태정치에서 벗어나려는 의욕이 묻어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해적기지’라며 반대하는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후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래선지 초기에 1~2%에 머물던 지지율이 20~30%대로 치솟았다. 당찬 정치 신인의 선거운동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미국의 정치자금 관리는 비교적 투명하게 이뤄지는 데 비해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 수준은 벗어났다지만 일단 출마해 상대와 경쟁을 벌이게 되면 법정 선거비용을 훌쩍 뛰어넘어 돈을 쓰는 경우가 많다. 30억원을 써야 당선되고 20억원이면 낙선한다는 ‘30당·20락’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을 정도다. 요즘도 선거때마다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는 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이 수십명씩 나온다. 2009년 11월엔 한 자치단체장이 62억원이나 되는 선거 빚 독촉에 시달리다 24억원을 받고 산업단지 구획을 변경해준 게 화근이 돼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돈 안쓰고 당선된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일본의 작가·영화감독·탤런트였던 아오시마 유키오는 1994년 지방선거에서 ‘무위(無爲)의 선거운동’을 내걸고 출마해 도쿄도지사에 당선됐다. 선거사무소 팻말을 아파트 문 옆에 붙여 놓고 집에서 책읽기, TV선거방송, 선거공보 등의 선거운동을 하는 데 딱 20만엔을 썼다.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그의 참신함을 높이 샀던 것이다.
3000만원만 쓰겠다며 4·11 총선에 도전중인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가 연일 화제다. 공천 기탁금 300만원을 낸 것으로 시작된 그의 선거비 지출은 지난 8일까지 2183만원에 불과했다. 점심식사값 회계사비용 사진값 주유비 등 세세한 내역을 공개하며 ‘맑은 선거운동’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상대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만큼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란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노력 없이 얻는 비례대표를 사양하겠다는 패기, 스스로 번 돈으로 선거를 치르려는 반듯함, 모든 비용을 공개하는 당당함 등에선 구태정치에서 벗어나려는 의욕이 묻어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해적기지’라며 반대하는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후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래선지 초기에 1~2%에 머물던 지지율이 20~30%대로 치솟았다. 당찬 정치 신인의 선거운동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