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항공기 제조업체 및 항공사들이 유럽연합(EU)의 ‘이산화탄소 배출 부담금(탄소세)’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 중국 등이 자국 항공사들까지 탄소세를 물도록 한 것을 문제 삼아 유럽 항공업체들에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어서다. 유럽 항공업체들마저 등을 돌린 탄소세 정책이 계속 시행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파이낸셜타임스는(FT)는 9개의 유럽 항공업체들이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4개국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환경 보호를 위해 도입된 탄소세가 지금은 무역분쟁의 원인이 됐다”며 정책 시행을 보류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12일 보도했다. 서한을 보낸 곳은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와 항공사 브리티시에어웨이 버진애틀랜틱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 에어베를린 이베리아, 항공기 엔진 제작사 사프란 MTU 등이다. FT는 “이들 업체는 중국과의 무역 분쟁 등으로 2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수백억달러의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고 전했다.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한국 등 26개국은 지난달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열고 EU의 탄소세 부과에 공동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EU 항공사들에 추가 세금을 부과하거나 이들의 신규 취항을 허가하지 않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중국이 에어버스와의 계약을 보류한 게 대표적 보복 조치로 꼽힌다.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남방항공 하이난항공 등 중국의 3개 항공사는 지난해 에어버스와 A330 45대를 공급받기로 한 120억달러(13조5000억원)짜리 계약을 맺었으나 아직까지 최종 구매 승인을 내리지 않고 있다. FT는 “중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도 유럽 항공업계에 제재를 가하거나 이들과 맺은 계약을 취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에어버스는 “지금 같은 불경기에 EU의 탄소세 도입이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 규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탄소세 도입을 연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EU 관계자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정책 실행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U 집행위원회는 탄소세 부과로 늘어나는 1인당 항공 요금이 2~12유로(3000~1만8000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항공업계는 1인당 요금이 최고 90달러(10만원) 더 오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CO2 배출 부담금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27개 역내 회원국에 취항하는 항공사에 이산화탄소 배출 상한선을 할당한 뒤 초과 배출한 항공사는 다른 항공사에서 배출권을 사거나 EU에서 추가 할당량을 구입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이산화탄소 1t당 100유로(15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