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전진하는 게 김영사 스타일"…"힘있고 통통 튀는 디자인 추구"
좋은 책을 만드는 데에는 편집과 디자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편집이 책의 뼈대를 구성하는 일이라면 디자인은 책의 얼굴을 만든다. 저자가 쓴 원고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출판사의 경쟁력은 편집부와 디자인실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윤경 편집부장(38)과 이경희 디자인실 부장(42)을 만나 김영사의 편집·디자인 철학을 들어봤다.

“편집자가 첫번째 독자로서 그 책에 감동을 받았는지가 가장 중요하죠.” 편집 경력 14년차인 김 부장은 좋은 책의 조건을 이렇게 설명했다. 편집자는 한 권의 책이 탄생하는 전 과정을 지휘한다. 어떤 책을 만들지 기획하고, 저자를 섭외한다. 투고된 원고를 파헤쳐 ‘보석’을 찾기도 한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가와 협의해 수정작업을 한다. 교정과 교열은 기본. 제목을 정하고 홍보, 마케팅 전략도 짠다.

“출판이 사양산업이고, 편집자는 어렵고 힘든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이 사라질 날이 머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오죠. 하지만 콘텐츠를 생산하고 창조하는 편집자라는 직업에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전망이 없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김 부장은 “편집자는 일과 일이 아닌 것을 구분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눈을 뜨나 감으나 책 생각을 떠올리게 돼요. 책이라는 게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서만 고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세상 모든 것들이 콘텐츠가 되고, 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세상에 필요한 책을 만들기 위해 인문적 소양을 키우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 흐름을 읽어내기 위해 전시회도 가고 공연도 자주 본다. 그는 “10년 넘게 편집자로 일했지만 늘 새롭고 다이나믹하다”고 했다.

김영사는 많은 베스트셀러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출간한 책마다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매몰 69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출된 칠레광부 33인의 이야기를 담은 《THE 33》은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냈다. 극적인 휴먼 스토리를 담고 있어 가능성에 주목했지만, 국내 출판시장에서 재난이란 아이템이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다. 방송을 통해 관련 내용이 낱낱이 소개돼 책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린 것도 요인이었다. 김 부장은 “과거는 돌아보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고 앞만 보고 직진하는 게 김영사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실패해도 전진하는 게 김영사 스타일"…"힘있고 통통 튀는 디자인 추구"
김영사 책은 디자인이 좋은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북 디자인은 책의 내용과 제목에 맞게 디자인을 기획하고 일러스트, 사진, 그림 등을 통해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다. “책의 내용을 한장의 표지에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작업입니다. 캘리그래프(손글씨)로 할지, 일러스트를 넣을지, 사진으로 처리할 지, 심플하게 갈 건지, 글씨는 어느 크기로 할지 결정해야 하죠.”

이 부장은 “감각적인 표지는 가급적 지양한다”고 말했다. 당장 보기에는 예뻐도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지는 이미지를 배제하고 나중에 봤을 때도 기억에 남는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설명이다. 2003년 개정판을 낸 《먼나라 이웃나라》표지는 지금 봐도 오래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은 글자를 이용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으로 당시 만화컷 중심이던 만화책 디자인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원서는 흰색 바탕에 ‘JUSTICE’라는 제목만 적힌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처음에는 JUSTICE라는 글자에 시각적 효과를 줘 디자인할 생각이었죠. 글씨 안에 이미지를 넣어보기도 하고, 다양한 효과도 줘봤어요. 글자가 지닌 힘을 보여주려고 했죠. 그런데 마이크 샌델 교수가 웅장한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뒷모습 사진이 5~6장의 표지사진 후보 중에 들어 있었어요. 사진을 앉혀봤는데 느낌이 좋았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죠.” 이 사진은 ‘하버드대 교수의 강연’이라는 컨셉트와 맞아떨어지며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기여했다.

김영사 책의 표지는 다소 남성적이다. 이 부장은 “많은 책들 중에서 한순간에 독자를 사로잡기 위해 강렬하게 눈을 끌 수 있는 것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표지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도록 형태나 색상, 일러스트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시리즈물은 통일된 컨셉트를 유지하면서도 각각의 책이 단행본처럼 개성을 지닐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멀리서 독자를 향해 환하게 웃는 책, 컴컴하고 어두운 책보다는 힘있고, 환하고, 활기찬 느낌을 유지하려고 해요. 내용이 아무리 암울하고 어두워도 표지에서는 통통 튀어야죠.”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