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와 컨셉트. 출판시장에서 승부는 이 두 요인에 의해 판가름난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고 독자의 감춰진 욕구를 살짝 건드리는 컨셉트로 접근하면 ‘대박’을 터뜨리기도 하는 게 출판시장이다. 그러나 시장 환경은 좋지 않다. 등록 출판사가 4만개에 육박하지만 지난해 한 권이라도 책을 낸 곳은 2615개에 불과하다. 개점 휴업 상태인 출판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 환경이 나쁘다는 의미다. 책을 사는 사람도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가계의 책 구입비용은 월 평균 2만원 남짓으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베스트셀러 쏠림 현상도 심하다. 대부분 책은 1쇄를 소화하기도 힘든 형편이다. ‘출판의 위기’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BIZ Insight] "문화가 자본이 되는 시대, 출판은 가장 뜨는 비즈니스"

○출판 콘텐츠 선두주자

김영사는 그래서 더 돋보인다. 박은주 대표는 “문화가 힘이고 자본이 되는 시대인 만큼 출판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 커진다”고 말한다.

“위기라면 종이책만의 위기겠죠. 출판은 콘텐츠를 기획하는 비즈니스예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창조는 이미 알려진 수많은 정보를 의미있게 체계적으로 재정리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출판이 그 작업을 해온 거예요. 콘텐츠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입혀서 세상에 내놓는 일, 출판은 시간이 갈수록 떠오를 비즈니스죠.”

김영사는 쾌속 항진해왔다. 2000년대 들어 매출과 순이익이 꾸준히 상승세를 탔다. 2009년 매출 500억원을 넘겼다. 1인당 매출이 5억원대에 이르렀다. 지난해는 주춤했다. 매출이 360억원대에 그쳐 2007~2008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2010년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창 주가를 올린 시기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다. 매출 규모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행복한 개개인이 모여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을 하는 행복한 회사를 원한다”고 말했다.

○“가치있는 책을 펴내라”

김영사에는 ‘백리스트’가 많다. 오래 팔리는 책들이다. 김윤경 편집부장은 “그동안 3000여종의 책을 펴냈는데 절반 이상이 백리스트”라고 했다. 30년 전에 낸 책이 아직도 팔린다. 세월을 타지 않는 김영사 콘텐츠의 수준을 보여준다.

밀리언셀러도 여럿이다.《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우중, 1989년), 《닥터스》(에릭 시걸, 1990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1994년),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2010년)는 100만부를 넘기는 장외홈런을 터뜨렸다. 1000만부 목록도 있다.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이원복, 1987년부터)와 《앗》시리즈다.

책을 선택하는 박 대표의 눈은 날카로우면서도 진중하다. 출간해야 할 이유가 충분한 책인지부터 묻는다. 출간하기로 결정하면 직원 모두 맡은 자리에서 온몸을 던진다.

30년 경력의 출판기획자이자 편집자인 박 대표는 컨셉트를 잡는 것부터 마케팅 전략까지 꼼꼼하게 조언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의 컨셉트를 일관성있게 유지하는 것. 기획, 편집, 디자인, 제작, 홍보, 광고, 마케팅에 이르는 어느 한 과정에서도 컨셉트가 흔들리면 안 된다.

그중에서도 1차 독자층의 특성 파악에 공을 들인다. 잘 팔릴지, 회사에 수익을 남겨줄 책인지 여부는 덜 따진다. 역사에 남을 책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흔들린 적은 없다. “출판사는 장사꾼 기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박 대표의 지론은 거기서 나온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책의 가치를 보고 발굴한 사례다. 이 책은 여러 출판사가 출간을 검토했지만, 딱딱하고 대중적이지 않다며 포기했다.

책 디자인 쪽에도 강점이 있다. 예전의 표지 디자인이 차분하고 침착했다면, 요즘은 색을 다채롭게 쓰는 편이다. 이경희 디자인실 부장은 “멀리 떨어져 다른 책에 묻혀 있어도 김영사 책이라는 것을 대부분 알아본다”고 했다. 특히 책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디자인을 중시한다. 보기에는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지는 디자인은 배제한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환하고 활기차며 남성적인 디자인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인으로 살고 존중하라”

김영사는 의사결정이 빠른 편이다. 사내 의사소통이 좋은 출판사로 소문나 있다. 서류작업도 많지 않다. 말로 보고하면 즉석에서 가부(可否)를 결정한다. 대표자와 바로 연결돼 피드백이 빠르다. 박 대표도 기다리는 편이 아니다. 담당자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컴퓨터 화면이나 시안을 보고 의견을 낸다.

경험이 풍부한 편집인력이 큰 자산이다. 박 대표가 주인의식을 강조하는 만큼 이직률이 낮다. 10년 이상 경력자도 많다. 좋은 콘텐츠를 앞서 확보하는 것 또한 강점이다. 순이익은 배당금을 제외하고 모두 재투자한다. 3~4년 뒤에 나올 의미있는 책들을 기획 단계에서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그래서 2015년의 지적 흐름을 지금 그려볼 수 있다”고 귀띔한다. 에이전시 관리에도 소문이 나 있다. 일을 몰아주는 편이라고 한다. 거래처는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인쇄소 제본소 등과 오래 거래한다. 20년 넘게 상생하는 곳이 많다.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단가 조정도 최소화한다.

박 대표는 “김영사가 거래처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더 신경을 써 일을 해주는 것 같다”며 “기업 간에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져 좋다”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