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5일 FTA무역종합지원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통구조 혁신’을 강하게 주문했다. FTA로 관세가 없어져도 수입업자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는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 국민이 제품가격 인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다.

과거 FTA가 발효돼도 수입품의 가격은 별로 떨어지지 않아 국민이 FTA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게 칠레 와인이다. 2004년 한·칠레 FTA 발효 후에도 한국은 칠레산 특정 와인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사 마신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경쟁이 제한적인 소수의 유통업자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올초 주세법 시행령을 고쳐 수입업자가 도·소매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술을 판매할 수 있게 한 뒤에야 칠레와인 가격이 떨어졌다.

지난해 7월 한·유럽연합(EU) FTA 발효로 자동차 관세가 인하됐지만, 벤츠나 폭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의 판매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유통에 대한 조사까지 벌였다. 샤넬 에르메스 등 유럽 명품 브랜드들도 가격을 수시로 인상하며 국내에서 배짱장사를 해왔다.

국내 유통구조가 복잡한 데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란 법이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대한상의 조사에서 국내 250개 유통기업 중 31%는 한·미 FTA 이후 수입품 판매가를 내리지 않겠다고 답했다. 가격을 내리겠다는 업체 중 75%는 판촉비와 복잡한 유통구조를 이유로 관세인하분 중 일부만 반영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