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책임 완화' 혼선…현대차 '통과'ㆍ포스코 '철회'ㆍ일동제약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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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왜 법대로 못하게 하나"…국민연금 지나친 개입 논란
포스코가 16일 오전 주주총회 중간에 안건을 전격 취소하는 등 기업들이 4월 시행되는 개정 상법에 맞춰 도입하려던 ‘이사의 책임 경감’과 관련한 정관 개정이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일동제약이 이날 주총에 상정한 정관 개정안은 표 대결 끝에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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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대림산업과 풍산홀딩스, (주)풍산은 국민연금의 반대 의견을 감안해 정관개정안을 철회했다. 반면 한라건설은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정관을 개정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효성 등의 주총에선 별다른 논란 없이 이사의 책임을 줄여주는 정관개정안이 통과됐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 주총은 순조롭게 시작됐으나 의장을 맡은 정준양 회장이 제2호 의안인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가결하기 위해 의사봉을 잡는 순간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반 주주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부터다.
한 소액주주는 “정관 개정안 중 사채 발행 권한 대표이사 위임, 이사 책임 감경 등이 책임경영을 약화시키고 주주권한을 제한한다”고 주장하며 해당 항목의 삭제 및 변경을 위한 수정안을 요청했다. 다른 주주들도 목소리를 높여 “찬성합니다”라고 외쳤다.
정 회장은 곧바로 주총 진행을 중단하고 법률자문단 측에 법적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한 뒤 이사 책임 감경 등을 삭제한 수정안을 상정해 승인을 받았다.
정 회장은 주총 직후 기자와 만나 “당초 상법 개정안을 따라 정관을 일부 변경하려 했던 것”이라며 “언제든지 주주의 의견을 받아들여 원안을 수정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어 “(이사 책임 감경을 둘러싼 논란 등) 사회적 여론과 분위기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포스코 관계자는 “주총을 앞두고 국민연금과 일부 외국인 주주들이 이사 책임 축소 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일동제약 주주들은 이날 오전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사 또는 감사 등의 책임경감 규정을 담은 정관 변경안을 표대결 끝에 부결시켰다. 표결 결과 찬성 52.4%, 반대 47.6%로 찬성이 다소 많았으나 정관변경에 필요한 특별결의요건(출석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넘지 못했다.
이호찬 씨(12.57%) 안희태 씨(9.94%) 등이 정관 변경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며 소액주주들의 위임장을 모았고, 기관투자가인 피델리티(9.99%)도 힘을 실어줬다.
한라건설의 이사책임 감경과 관련한 정관변경은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가결됐다. 회사 관계자는 “7.2%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반대했으나 9%대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과 나머지 주주들이 찬성하면서 통과됐다”고 말했다.
오는 23일 열리는 정기주총에 이사 책임 감경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상정하기로 한 한화 기아자동차 금호석유화학 등은 다른 기업들의 주총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개정 상법을 반영하려는 것으로 국민연금 측에서 별다른 의사표시는 아직까진 없었다”며 “안건 철회 등은 현재로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한화 지분 7.39%를 가진 주요주주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의 또는 중대과실은 어떤 경우에도 면책되지 않는데도 국민연금이 정관 개정을 반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는 “유능한 경영진을 쉽게 영입해 적극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이사의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법 개정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정 상법 제400조 2항은 ‘고의 또는 중대 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관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회사에 대한 이사의 책임을 최근 1년간 이사 보수액의 6배(사회이사는 3배) 이내로 제한할 수 있도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수언/장창민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