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폐지는 자본시장에서 기업에 대한 사망신고나 다름없다. 비상장기업으로 영업활동은 영위할 수 있지만 증시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이 사라진다. 자금 조달이 힘들어지고 주식의 유동성도 제약을 받게 된다. 투자자들이 입는 손해와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상장폐지 요건을 보고 이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자제하는 것만이 피해를 막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3년 연속 적자땐 일단 멀리 … 잦은 '경영권 변동'도 주의해야
○상장 폐지 요건 체크해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지난 15일까지 582개 상장사가 증시에서 사라졌다. 2008년 금융위기 후 기업실적 악화와 거래소의 실질심사제도 도입 등으로 2009년 이후 급속히 증가했다. 2009년 한 해만 83개사, 2010년에는 사상 최대인 94개가 퇴출됐다. 올 들어서만도 6개사가 상장폐지의 고배를 마셨다.

감사보고서 제출 기한이 임박하면서 내달까지는 상장폐지 기업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감사보고서상 외부 감사인의 감사의견이 ‘감사 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유가증권시장은 2사업연도 연속)’이거나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일 때는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코스닥시장의 경우 △2년 연속 연간 매출이 30억원 미만 △2반기 연속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이거나 자본전액 잠식 △2반기 연속 자기자본 10억원 미만일 때는 사실이 확인된 시점부터 매매거래가 정지되고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는 법인세비용차감전 계속사업손실이 확인됐을 때도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유가증권시장은 △2년 연속 매출 50억원 미만이거나 △2년 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 △자본전액잠식일 경우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상장폐지 기업 징후는

상장 폐지 기업들은 여러 가지 징후가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장폐지에 근접할수록 매출 감소에 비해 영업손익이 악화되는 정도가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스닥 일부 기업의 경우에는 매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다수의 회사를 동원해 서류상 순환매출을 일으키는 방법을 쓰다 적발된 경우도 있다.

일반공모보다는 사실상 제3자에게 배정하는 방식의 공모 또는 사모로 자금을 끌어들이거나 소액공모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금조달을 시도하는 모습도 상장폐지 기업들 사이에서 자주 눈에 띄는 특징이다.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를 하면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거나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이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최대주주나 대표이사 등 경영권 변동이 잦은 기업도 요주의 대상이다. 2008년 이후 상장폐지기업은 평균 1.88회 최대주주가 바뀌었고 평균 3회 대표이사를 갈아치웠다.

선급금이나 대여금 등 투자성 계정과목 비중이 지나치게 높거나 크게 변동하는 기업도 상장폐지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경제성 없는 주식을 고가로 사들이거나 선급금이나 대여금으로 지불된 돈이 실제로는 그 회사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투자 회사의 재무 및 영업상황이 부실해서 사실상 대여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결국 기말에 손실처리가 되고 그 결과 비교적 짧은 기간에 손익이 크게 변동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횡령·배임도 주요 징후 중 하나이다. 2008년 이후 상장폐지된 기업의 절반(50.2%)이 횡령·배임혐의가 있었다. 횡령의 근본적 원인은 대부분 내부통제 부실에 있다.

민병현 금감원 기업공시국 부국장은 “투자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공시한 자료를 통해 상장폐지 징후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투자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속 적자기업 일단 멀리

와우넷 전문가들은 일단 적자 기업은 투자대상에서 뺄 것을 주문했다. 와우넷 김재� 소장 “종목을 고를 때 3년 연속 적자 기업은 퇴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흑자 전환까지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평균 거래량이 1만주 미만인 종목도 주가 하락시 원하는 가격에 팔 수 없어 사전에 거래량을 체크할 것을 당부했다.

조영욱 대표는 “코스닥시장 내 설비투자나 증설 예정 기업은 중장기 투자를 가급적 피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비용이 늘어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증설 완료 후 2~3개월 정도 가동 추이를 점검한 후 투자에 나서라는 얘기다.

거래소의 사전 경고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득재 실장은 “거래소의 투자유의나 기타시장안내 등에 나타난 기업의 경영환경 변화나 시장조치 등을 반드시 살펴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