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대한민국의 흥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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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윤 경제부장 hyunsy@hankyung.com
대통령 선거에 나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7% 성장을 얘기했을 때도, 이명박 대통령이 747(7% 경제성장, 4만달러 국민소득, 7대강국 진입)을 얘기했을 때도 기자는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봤다. 잠재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목표치를 무슨 수로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표를 얻기 위한 사탕발림은 아닌지. ‘달성 가능성’이라는 잣대로만 평가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백태를 보면서 당시 기자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았다. 선거 정국에서 ‘성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뒤에야 그 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경제 성장은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허망한 단어다. 성장률이 높아졌다는 게 내 삶이 나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돈을 더 번다는 뜻도 아니다.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더더욱 관련이 없다.
공약에서 사라진 ‘성장’
우리가 목이 터져라고 외쳤던 성장은 우리 사회 전체의, 국가의 가치를 담고 있다. 세계로 시야를 넓혀야 들어오는 개념이다. 왜 우리가 일본에 뒤져야 하는지, 한국인은 미국인보다 잘살 수 없는지, 동아시아의 주변국으로만 계속 머물러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단어다.
탈(脫)권위와 분배, 강남집값 잡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짓고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 나선 것은 ‘집단’으로서의 한국사회 발전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개방은 세계시장에서 스스로를 경쟁에 더 많이 노출시키는 행위다. 자신의 것을 밖에 내주면서 바깥세계 전체를 껴안는 성장 전략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경제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국가의 번영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미국의 보호막 아래에서 경제발전에 주력해왔다. 내일도 이런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스스로 지킬 능력이 없는 경제번영은 언젠가 다른 국가나 집단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한국의 정치권이 내놓은 선거공약에는 ‘성장’도, ‘국가방위’도 보이지 않는다. 새 이름으로 단장한 집권 새누리당도, 야권연대를 이뤄낸 통합민주당도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국가로서의 집단의식이 한국 사회에서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일지 모르겠다.
내부 이해다툼에만 관심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의 제주 해군기지 반대는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은 다 싫다’는 차원의 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주 해군기지는 남북대치뿐만 아니라 동북아 정세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에 대비하고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큰 시각에서 시작된 국방사업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미국의 보호망 아래 있다는 사실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스스로 지키는 힘을 키우자는 데 반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내부의 이해 다툼에만 눈을 부릅뜨고 있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거나 벌어들이는 것을 나눠갖자는 싸움은 정치권의 ‘보이는 손’만 키운다. 정치 과잉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가격메커니즘과 달리 자의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판이 흔들리고 부패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물론 우리 사회가 일직선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등락을 거듭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세계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국가로 한국이 성장해 나갈 것으로 기자는 굳게 믿는다. 하지만 정치권의 요즘 모습을 보면 국가의 흥망이라는 사이클에서 우리는 ‘하강 국면’에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현승윤 경제부장 hyunsy@hankyung.com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백태를 보면서 당시 기자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았다. 선거 정국에서 ‘성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뒤에야 그 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경제 성장은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허망한 단어다. 성장률이 높아졌다는 게 내 삶이 나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돈을 더 번다는 뜻도 아니다.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더더욱 관련이 없다.
공약에서 사라진 ‘성장’
우리가 목이 터져라고 외쳤던 성장은 우리 사회 전체의, 국가의 가치를 담고 있다. 세계로 시야를 넓혀야 들어오는 개념이다. 왜 우리가 일본에 뒤져야 하는지, 한국인은 미국인보다 잘살 수 없는지, 동아시아의 주변국으로만 계속 머물러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단어다.
탈(脫)권위와 분배, 강남집값 잡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짓고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 나선 것은 ‘집단’으로서의 한국사회 발전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개방은 세계시장에서 스스로를 경쟁에 더 많이 노출시키는 행위다. 자신의 것을 밖에 내주면서 바깥세계 전체를 껴안는 성장 전략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경제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국가의 번영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미국의 보호막 아래에서 경제발전에 주력해왔다. 내일도 이런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스스로 지킬 능력이 없는 경제번영은 언젠가 다른 국가나 집단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한국의 정치권이 내놓은 선거공약에는 ‘성장’도, ‘국가방위’도 보이지 않는다. 새 이름으로 단장한 집권 새누리당도, 야권연대를 이뤄낸 통합민주당도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국가로서의 집단의식이 한국 사회에서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일지 모르겠다.
내부 이해다툼에만 관심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의 제주 해군기지 반대는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은 다 싫다’는 차원의 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주 해군기지는 남북대치뿐만 아니라 동북아 정세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에 대비하고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큰 시각에서 시작된 국방사업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미국의 보호망 아래 있다는 사실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스스로 지키는 힘을 키우자는 데 반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내부의 이해 다툼에만 눈을 부릅뜨고 있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거나 벌어들이는 것을 나눠갖자는 싸움은 정치권의 ‘보이는 손’만 키운다. 정치 과잉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가격메커니즘과 달리 자의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판이 흔들리고 부패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물론 우리 사회가 일직선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등락을 거듭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세계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국가로 한국이 성장해 나갈 것으로 기자는 굳게 믿는다. 하지만 정치권의 요즘 모습을 보면 국가의 흥망이라는 사이클에서 우리는 ‘하강 국면’에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현승윤 경제부장 hyunsy@hankyung.com